2011년 11월 12일. 베를린 훔볼트대학교 중앙도서관 열람실 5층

2011/글2011. 11. 14. 04:35


 

드디어 이곳에 앉아 베를린에 오기 전부터 꿈꾸었던 일을 했다. 고종석의 「도시의 기억」 연재물에서 처음 들어본 훔볼트 대학교’, 이곳의 중앙 도서관에서 헤겔과 마르크스를 설명한 쉬운 철학 책을 읽는다.

사진으로 미리 보았던 그 모습 그대로 도서관은 나를 받아주었다. 아래가 다 내려다보이는 4층 열람실에서 책을 읽고 글을 쓰고 있으니 지적 허영심이 그 어느 때보다 채워지는 느낌이다. 솔직히 밝히건데, 나는 지적 허영심이 있다. 다른 사람들보다 많이 알고 싶어하며, 알기 위해 노력하며, 안다는 사실을 은근슬쩍 드러낸다. 최소한의 염치는 있어서 대놓고 아는 체를 하지는 않지만, 언제나 은근슬쩍 내가 아는 것들을 자랑하고 싶어한다. 내가 이런 놈이라는걸 인지하고 있으니 그나마 다행이라고나 할까?

훔볼트 대학은 헤겔이 철학교수로 재직했던 대학이다. 그 당시 이름은 베를린 대학이었을 것이다. 이 대학과 도서관에 대한 이야기는 맨 아래에 있는 링크를 클릭해서 읽어보시길 바라면서 나는 내 이야기를 이어가고 싶다. 그러니까 이번 글은 사실 베를린이랑은 별 관련이 없다.

원래는 이 대학의 역사와 이런저런 철학에 대한 이야기, 그리고 그런 철학들에 대한 이야기를 쓰려고 했으나, 한 구절을 읽고는 헬싱키에서부터 쓰고 싶었던 이야기를 여기서 정리하기로 마음을 바꾸었다.

 

[말을 올바로 사용해야 생각이 올바르게 정리된다]

 

당연한 말씀이다. 그런데 내가 느낀 것은 저 간단한 원리가 얼마나 적용되기 힘들지에 대한 짧은 소견이다.

내 이름은 김종욱이다. 영어를 위한 로마자 표기로 ‘JONGWOOK KIM’을 사용하는데, 사실 // 발음을 위해 로마자 W를 사용하는 건 마땅한 대안이 없어서이다. 한국어 소리 //과 영어 소리 /W/는 아주 다른 소리지만, 그렇다고 ‘JONG’뒤에 곧장 ‘OOK’를 쓸 수도 없는 노릇이다. 그랬다가는 다들 /jon-guk/으로 발음할 테니까. 차라리 /jong-wuk/이 낫다. 앞서 말했지만 이는 영어에서 일어났던 이야기다. 그런데 페로 제도와 코펜하겐, 헬싱키를 거치며 흥미로운 경험을 했다. 내 여권이나 예약 문서를 확인한 모든 사람들은 내 이름의 로마자 표기 JONG을 하나같이 //에 가까운 소리로 읽었다. J I와 같은 뿌리에서 나왔고, 또 몇몇 영단어조차 J가 그와같이 소리난다는 사실을 모르지는 않았지만, 막상 내 이름이 그렇게 불렸을 때 나에게 더 밀착되어 다가왔다.

 

코펜하겐의 뉘하운 근처 커피전문점에서 카푸치노를 주문했다. 런던에서 워낙 맛없는 커피에 실망했던 터라, 잘 만든 우유 거품과 어울린 커피를 보고는 마냥 기분이 좋았다. 페이스북에 사진을 올렸고, 친구들 가운데 한 명이 저 커피는 라떼에 가깝지 않냐는 말을 남겼다. 그냥 그런가보다 했다. 헬싱키의 포럼 백화점 맞은편 2층짜리 커피샵에서 또다시 카푸치노를 주문했다. 이번에도 내가 알던 라떼에 가까운 커피가 나왔다. 이번엔 의구심을 품는다. 이곳 사람들은 왜 카푸치노를 이렇게 마실까? 메뉴판을 다시 한 번 살펴보니 라떼가 더 비싸다. 이미 커피를 한 잔 마신 저녁시간이었지만, 추측을 확인하고 싶어 또 한잔의 커피를 시킨다. 라떼 한 잔 주세요. 내가 알던 카푸치노에 가까운 커피가 나온다. 단어 A B가 물체 A’ B’와 각각 연결되어 있었는데, 다른 나라에 가보니 그 연결관계가 반대로 맺어져 있었다. 커피 두 잔과 함께 그 사실을 확인한 대가로 나는 헬싱키의 마지막 밤에 쉽게 잠들지 못했다.

한국어에 섞여드는 영어에 대한 반감부터 시작한 나의 언어에 대한 관심은 무슨 대단한 전문성을 자랑하진 못하지만 그래도 가볍지 않은 편이다. , 한가지 밝혀두자면 지금은 한국어에 스며드는 영어에 대해 큰 반감이 없다. 다만 나는 최대한 한국어 단어들로 대화와 문장을 꿰어나가려 여전히 노력한다. 말을 올바로 사용해야 생각이 올바르게 정리된다는 당연한 명제는 사실 매우 어렵게 느껴진다. 고유해야만 하는 이름조차 다른 곳에 가면 똑같은 표기임에도 다르게 불리우고, 작은 유리잔에 손톱 정도의 두께로 거품을 얹은 커피를 칭하던 라떼와 큰 잔에 풍성한 거품과 함께 대접되던 카푸치노의 연결관계는 다른 세계에 오자 거꾸로 맺어져 있었다.

너와 나의 의사소통과 교감이 절대 쉽지 않은 일이라는걸 여행을 하며 여러 번 깨닫게 된다. 같은 말을 두고 다르게 해석할 때, 우리는 어떻게 소통해야하는 걸까?



참고 링크
-  고종석의 도시의 기억들, 베를린편
-  훔볼트대 중앙도서관에 대해
-  훔볼트대학교, 위키피디아 한글설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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