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큐멘터리 3일, 아마르 꼬레아-칠레 Kpop콘서트 방송을 보고

자유게시판2012. 9. 3. 01:15

장을 보태서 말하자면, 단군 이래 아주 최근까지 이놈의 반도에서는 한 번도 '문화'를 제대로 수출해본 적이 없다. 문화 가운데서도 특히 큰 파급력을 지니는 대중문화는 더더욱 그래본 적이 없다. 한국사를 최대한 자랑스럽게 서술하는 중고교 국사교과서에서도 문화나 학문 수출에 관한 내용은... '우리 조상들이 사실은 일본에 문화를 전달해줬다더라' 정도.아주 가끔 예외적인 사례로 최치원같은 인재가 언급되기는 하지만, 알고보면 현시창[각주:1].오바하느라 국사교과서 얘기까지 꺼내봤다. 입론은 여기까지.


랬던 우리가 최근 몇 년간 다른 양상을 보여주기 시작했다. SM 소속 가수들이 동남아시아에서 인기를 얻기 시작하더니, 박진영이 그전과는 다른 각오와 실천력으로 원더걸스를 미국시장에 데뷔시켰다. 이어진 일본 대중음악계 진출 소식. 박재범&2PM사건 당시 세계 각국의 팬들이 소셜미디어를 이용해 표출한 재범 지지선언. 영국,프랑스,호주 등 서구권 국가에서 개최된 Kpop콘서트. 그리고 강남스타일의 등장.


http://www.businessinsider.com/gangnam-style-k-pop-google-youtube-twitter-2012-8

미국 IT전문 온라인매체 비즈니스 인사이더에서는 최근 강남스타일을 주목하고 있다. 

최근 2주간 강남스타일을 다룬 기사가 네 건이다. 한 건은 단순히 아래 영상을 소개하는 기사.




2012 MLB 포스트시즌을 알리는 FOX채널 공식 광고....는 아니고 어느 MLB덕후 팬의 작품.


'강제 한류 진출'이라는 말처럼 싸이 본인은 좀 피곤해하는것 같기도 하다...




러나 이가 전세계적으로 히트를 치는 와중에도, 나는 Kpop이라는 '문화'가 세계적으로 뻗어나가지는 못할 것이라고 예측했다. 우리나라에서 한때 일본 락음악이 충실한 마니아층을 확보했던것처럼, 잘 해봤자 바로 그 만큼의 영향력을 발휘할게 뻔하다고 생각했다. 사실 강남스타일 이전에 이루어진 아시아 외부의 한류 진출은 우리나라 언론이 과대포장해 광고한 면이 분명히 있었고[각주:2]나에게 있어 Kpop이 해외에서 잘나간다든지, 한류열풍이 불고 있다든지 하는 소식들은 이렇게 정리되었다 - 어느 정도 유행인건 알겠는데, '그쪽 동네의 오타쿠 문화' 정도이고 강남스타일은 그냥 예외. 아주 아주 아주 예외. 나뿐만 아니라 많은 사람들도 Kpop 열풍의 실체를 좀처럼 믿지 않았다. 


좀 험악한 예를 들자면...

일베는 여러모로-좋은의미 안좋은의미 다 포함해서- 대단한 곳이다.



런데 오늘 KBS2TV 다큐멘터리 3일(아마르 꼬레아-칠레 Kpop콘서트) 방송을 보고는 생각이 조금 바뀌었다.














이 방송을 보는데, 문득 오래전 들었던 노래 하나가 떠올랐다. 

<배치기 1집 - Jackson 5>

아마도 중3 때였을껄? 시험을 망쳐 기분이 슬퍼있고
그렇다고 술퍼먹을 내 나이도 아니고
라디오를 무심코 틀었는데
Wu-Tang Clan 음악이 나오는거야 글쎄
그 한 곡이 끝나자 마자 내 가슴은 두근두근 뛰며
우리반 1등 보다 더 큰 희열을
맛봤었지 숨은 가빠졌지
그 설레임은 후에 겪은 첫사랑 보다 더

(...)

빡쎈 밤샘 작업에 지칠때 난 생각해
알아 들을 수 없는 그 지껄임의 위대함을 말야
그때의 그 4분에 난 지금 펜과 씨름하고 있으니까
이 글자들은 곧 내 입을 거쳐
거침없이 어느 누군가의 귀에 파고 들어가겠지?
그때의 그 설레임 누군가 느낄 수 있길 혹시 알아? 그 사람에겐 내가 Wu-Tang[각주:3]이될지

(곡 듣기 새 창 바로가기 클릭)

(한때 힙합 덕후였던게 여기서 드러나는구나ㅜㅜ)


K-pop이라 불리는 우리나라 가요는 해외 시장에 진출하기 시작한지 오래 되지 않았다. 아무리 길게 잡아도 본격적인 현지 대중가요 시장에 편입되기 시작한 건 10년이 채 되지 않는것 같다. 당연히 인지도가 낮을 수밖에 없고, 하나의 사회에서 주류문화로 편입되기는 힘들다. 우리나라에서도 수많은 사람들이 미국 드라마, 일본 드라마의 여러 장점을 주변인들에게 설파하지만, 정작 한국 영상물 문화의 중심은 TV 드라마와 한국 영화인 것과 비슷한 이치라고 생각한다. 위에서도 밝혔지만, 나는 Kpop이 해외 시장을 평정했다든지, 한류 열풍이 해외 문화계를 점령했다든지 하는 기사에 큰 신뢰도를 느끼지 못한다. 사실이 아닐 게 뻔하다고 생각하니까. 


런데, 가만 생각해보니 우리가 언제 우리의 '문화'를 수출해본 적이 있던가? 이 땅의 학문과 문화계는 유구한 역사를 자랑하며... 다른 곳의 앞선 학문과 문화를 수입하고 이해하는데 바빴다. 방송을 보며, 마냥 수입만 하던 우리가 문화를 수출하고 있다라는 현상을 떠올릴수 있었다. 그러자 Kpop과 한류가 마냥 우습게 보이지 않았다. 여기서 국위선양이라는 단어는 별로 쓰고 싶지 않다. Kpop 열풍은 한국이라는 나라가 알려지는 과정이기도 하지만, 그 자체는 중요하지 않다고 보기 때문이다. 배치기가 누군가의 Wu-tang Clan이 되었는지는 아직 확실하지 않지만, 한국의 문화계가 다른 나라의 어떤 곳에서 아주 작게나마 문화 전파자로서의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은 확실해졌다. 다시한번 강조해야겠다 - 아주 작게나마 전파하고 있다. 국내에서 아이돌 음악을 어떻게 평가하든, 한국의 아이돌은 해외 각지에 흩어져있는 그 누군가에게  Wu-tang Clan이 되었다. 반만년 역사를 통틀어 제대로 성공해본 적이 거의 없는 대중문화의 전파자 역할을 우리 나라는 이제 미약하게나마 시작한것 같다. 


*덧붙임 1. 역시 글쓰기는 보통 일이 아니다. 자고 일어나서 다시 읽어보니 내가 표현하고자 하는 생각의 둘레가 명확하게 표시되지 않은 느낌.

*덧붙임 2. 다른 사이트에 올렸다가, 유로댄스의 카피에 불과하다는 댓글을 받았다. 본문에도 은근히 드러나는 뉘앙스인데, 나도 Kpop의 독창성이나 그것이 진정한 한국 음악이라거나.. 하는 생각에는 동의하지 않는다. 다시한번 확인했다. 말은 말을 낳는다. 한 번 글을 쓸 때는 예상가능한 반론과 그에 대한 재반박을 꼭 같이 써야겠다.

*덧붙임 3. 게임산업의 수출을 아예 생각도 못했다. 우리나라 문화를 수출해본 적이 없다는 부분에 대한 수정이 필요.







  1. 최치원은 빈공과에 급제한 후 2년간 관직이 나오지 않아서 허송세월을 하면서 서류대필과 저술활동으로 끼니를 때우다가 겨우 선주 율수현의 현위에 임명이 되었으나 이듬해 사퇴한다. 빈공과 자체가 외국인을 대상으로 하는 과거다보니 여기 급제해봐야 제대로 된 대우를 받을 수 없었고, 당시 당의 사정이 그렇게 만만한 것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참고:http://rigvedawiki.net/r1/wiki.php/%EC%B5%9C%EC%B9%98%EC%9B%90 [본문으로]
  2. 지난 5월에 방송된 mbn 시사기획특집 한류본색을 검색해보자 [본문으로]
  3. 혹시나해서 각주 하나. 리쌍의 개리도 힙합음악에 처음 빠지게 된 계기가 우탱클랜의 멤버 메소드맨의 뮤비를 본 것이라고 작년 Ceci 인터뷰에서 말했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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