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제

자유게시판2012. 2. 17. 11:22
잠을 깨기 위해 커피를 한 잔 마신다. 아무것도 넣지 않은 진한 에스프레소 한 잔. 처음 에스프레소를 접해본게 언제였더라? 정확한 때는 기억나지 않지만, 첫인상이 어땠는지는 어렴풋이 기억난다.

함부로 주문하면 안 되는 음료.

난생 처음 보는 작은 잔에 색과 향이 모두 진한 액체가 나왔었는데, 주문을 한 엄마와 이모는 모두 황당해했다. 아마 잘 모르고 주문을 하셨거나, 실수를 하셨나보다. 나랑 동생이 무얼 마시고 있었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이렇게 기억이 흐릿한걸 보니 적어도 고등학교에 들어가기 전의 일인가보다. 10여 년의 시간이 지나 이제는 내 앞에 놓인 에스프레소. 여기까지 쓰고 보니 졸음이 싹 가셨다. 에스프레소 덕분인지 글쓰기 덕분인지는 잘 모르겠다. 카페인에 내성이 생겨버린건지 요즘은 커피를 마시고도 잠드는 일이 종종 있으니까.
아무튼, 햇살 좋은 날 커피 한 잔과 시작하는 하루는 괜히 기분이 좋아진다. 이제 에스프레소는 어렵지 않게 주문해도 되는 음료다. 어디 에스프레소 뿐이랴, 다른 커피들도 더이상 어렵지 않다. 카페 라떼, 카푸치노, 마키아또, 샷 추가해주세요, 파우더는 괜찮아요... 나이를 한 살 두 살 먹어가면서, 알지 못하는 것들에 대한 두려움은 한 겹 두 겹 떨어져나간다. 알기 때문에 두려워지는 때가 많아져서 문제긴 하지만...
 
기분좋게 시작한 글인데 갑자기 씁쓸해졌다. 아, 에스프레소 맛도 씁쓸했었지. 여러모로 사는 게 꼭 커피같다. 일단 다양해서 어려워보인다. 알고 나면 별 거 없는듯하면서도, 알면 알수록 좀 씁쓰름하다. 겨우 스물 다섯살이 이렇게 말하니 내가 읽어도 좀 같잖긴 하지만, 씁쓰름한걸 어쩌랴. 점심을 먹고 나서는 달짝지근한 커피를 마셔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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