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업에 귀천이 없는가?

자유게시판2011. 7. 18. 14:39

*2011년 7월 18일에 처음 쓰기 시작했던 글인데, 이제서야 마무리지으려 합니다 (2013년 2월 20일) *


'직업에 귀천이 없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사실인지 아닌지 쉽게 판별하기 힘들지만, 사실이라고 믿는 사람도 있고 아니라고 믿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러나 솔직히 터놓고 말해, 상이한 직업에 대해 우리가 느끼는 인상이 달라지는 것은 자명해보입니다. 
'공인 회계사'와 '건설 노동자' 사이에는 메꾸기 힘들어보이는 큰 간격이 느껴집니다. '좋은' 직업이라는 인상과 '좋지 않은' 직업이라는 인상 말입니다.

저는 사실 2년 전 호주 멜번에서 직업 청소부였습니다. 청소일을 하던 당시, '직업에 귀천이 없다'라는 말은 사실로 느껴졌습니다. 하나의 도시가 제대로 유지되기 위해서는 다양한 직업을 가진 사람들이 각자의 일을을 수행해야만 합니다. 결국 넓은 관점에서 보자면 모든 직업은 동등하게 '필요'한 직업인 셈입니다. 

저는 두 군데에서 청소일을 했었습니다. 집 근처의 이탈리안 레스토랑과, 집에서 2km정도 떨어져있는 건물의 화장실입니다. 하루종일 요리사들이 음식를 만들면서, 손님들이 식사를 하면서 레스토랑은 여기저기 더러워집니다. 하루종일 회사원들이 볼일을 보면서 건물 화장실은 더러워집니다.어떤 장소를 누군가가 지저분하게 만들었다면, 더러워진 장소는 깨끗해져야할 필요가 있습니다 누군가가 더럽혀놓은 장소를 치우기 위해 저는 매일 일을 했습니다. '필요성' 하나만 집중해 생각해본다면, 청소부는 정말로 필요한 직업입니다.

필요성을 기준으로 직업의 귀천을 정하기는 어려운듯 합니다. 청소부는 반드시 필요한 직업이지만, 그 외 모든 직업도 당연히 필요합니다. 대한민국의 대학생의 일상을 생각해볼까요? 통학을 위해서 대중교통을 운전해주시는 분들이 필요합니다. 강의를 진행해주시는 교수님들도 필요하고, 각종 사무업무를 처리해주는 행정실 직원도 꼭 필요하고, 수업이 끝난 후 친구들과 술한잔 하기위해 술집 사장님과 술집 아르바이트생도 꼭 필요합니다. 

'필요성'을 기준으로 생각해보고 있습니다. 이러한 관점에서 세상 모든 직업은 반드시 필요한 직업이며, 결국 상이한 직업들 사이에 위계 차이는 발생하기 어렵습니다. 이렇듯 '필요성'의 관점은 우리가 알게 모르게 느끼는 직업에 대한 상이한 인상들에 변수로 작용해, 그러한 인상들을 뛰어넘어 모든 직업이 동등하다는 결론을 낳습니다.


그런데 실제 우리의 삶을 들여다보면 상황이 그리 간단하지 않습니다. 한국 사회의 직업 지형도는 정규직과 비정규직으로, 혹은 고소득자와 저소득자로 양극화되어가는 양상을 보이고 있습니다. 사람마다, 직업마다 급여에 차이가 발생하는 것은 나쁜 일이 아닙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그 차이가 심해지자 슬퍼하기 시작했습니다. 이 상황에서 직업에 귀천이 없다는 말은, 실체 없는 담론들 가운데 하나일 뿐입니다. 문제가 되는 것이 무엇인가 생각해보았습니다. 제가 느낀 문제점은 바로 '공동체가 각 직업에 대해 어느 정도의 보상을 해주는가' 입니다.

어떠한 직업이든, 일을 한 사람은 그에 대한 보상으로 급여을 받습니다. 급여를 통한 보상 자체는 자본주의 원리를 받아들인 세계 각국의 보편적인 현상입니다. 보편적 현상이 특수성을 띄는 부분이 바로 보상으로서 주어지는 급여의 수준입니다. 이는 나라마다, 도시마다, 공동체마다 달라집니다. 동일한 직업을 가진 사람일지라도 어느 곳에서는 A만큼의 액수를, 다른 곳에서는 B만큼의 액수를 받을수 있습니다. 이는 해당 사회가 특정한 직업에게 어느 정도의 보상을 해줄 것인지에 대한 합의가 다르기 때문에 나타난다고 생각합니다. 쉽게 말해 '연봉이 얼마인가' 문제입니다. 이는 위에서 언급한, 상이한 직업에 대해 우리가 느끼는 상이한 인상의 간극, 다시말해 '좋은/좋지 않은' 직업이라는 '인상의 차이'에 또다른 변수로 작용합니다 '얼마나 돈을 잘 버는가'라는 변수입니다. 한 가지 더 고려할 사항이 있습니다. 급여의 차이는 절대적 차이 자체로도 유의미하지만, 해당 사회의 물가가 어느정도인지가 더 중요합니다. 월 소득 100만원으로도 기본적인 생활 유지가 가능한 물가의 사회가 있는 반면, 월 소득 200만원은 되어야 기본적인 생활 유지가 되는 물가의 사회도 있는 법입니다.

'필요성'이 설명해주지 못하는 부분이 여기에서부터 설명됩니다. 필요성의 기준으로만 생각한다면, 인상으로서 느껴지는 '좋은/ 좋지 않은' 직업의 차이는 상쇄됩니다. 그러나 인상의 차이가 실질적 귀천의 차이로 나아가는지 여부는, 특정 사회가 특정 직업군에게 기본적인 삶의 수준을 허락하는 급여를 제공하는가에 달려있다고 생각합니다. 여기에는 절대적 급여의 차이와 함께, 상대적 물가의 차이도 반드시 고려되어야만 합니다.

제가 겪은 호주 사회에서, 청소부나 건설 노동자는 결코 낮은 지위의 직업이 아니었습니다. 한 시간 노동의 대가는 한국 돈으로 환산하면 아무리 적게 잡아도 2만 7~8천원에서 시작해 높게는 5~6만원을 상회합니다. 육체적 피곤함을 담보로 하지만, 노동을 통해 받은 급여는 해당 직업인과 그의 가족들이 풍족한 삶을 유지하는데 전혀 부족함이 없습니다. 물론 한 건의 예외도 없는 것은 아닙니다. 칠레 출신의 청소부는 자신의 직업을 'shitty job'이라고 표현했습니다. 천한 직업이라는 자의식이었습니다. 이러한 예외를 제외한다면, 길거리에서 보았던 청소부와 건설 노동자들의 일상은 매우 당당해보였습니다. 그들이 받는 적정선의 급여와 그것을 통해 가능해지는 일과 후 여유로운 생활은 불현듯 느껴지는 '힘든 직업'이라는 인상을 아주 쉽게 무력화시켰습니다.

저는 지금 교환학생으로서 덴마크에 거주하고 있습니다. 교환학생이라는 신분의 한계와, 덴마크어를 모른다는 언어의 한계상 저는 이곳에서 직업과 급여, 공동체가 상이한 직업들에게 어떤 보상을 지급하는지를 피부로 완연히 느끼기는 어려울거라 생각합니다. 그래도 호주에서 피부로 느꼈던 그만큼, 이곳에서는 머리와 지식으로나마 알고 돌아가겠다고 다짐합니다.

대한민국 사회로 눈을 돌릴때가 왔습니다. '필요성'을 기준으로 생각한다면 대한민국 사회에서도 청소부는 반드시 필요한 직업입니다. 그러나 우리 사회는 과연 그들에게 어느 정도의 삶을 허락하고 있는지 진지하게 고민해야한다고 생각합니다. 알게모르게 느껴지는 '좋은/ 좋지 않은' 직업이라는 인상은, 안타깝게도 급여의 차이로까지 영향을 미쳐 해당 직업에 대한 인상을 고착화시킵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직업에 귀천이 없다'라는 표현은 공염불에 지나지 않습니다. 한국 사회에서 기본적인 생활 유지를 위해서는 어느 정도의 돈이 필요한지, 그리고 우리는 과연 공동체 구성원들에게 기본적인 생활 유지를 위해 어느 정도의 보상을 할 준비가 되어있는지 다같이 생각해봐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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