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참 모순적인 사람이다. 대체로 정이 많고 다른 사람을 배려하지만 때때로 모질게 이기적이고, 대체로 양심을 따르며 규칙을 준수하려 하지만 때때로 정해진 것들을 거부하며 파괴적인 방향을 지향하기도 한다. 누구나 그렇겠지만 내가 생각하는 나는 어쨌든 이상한 점이 많은 사람이다.
이상한 점이 많으면서 동시에 생각도 많은 나에게 영어는 참 성가신 존재다. 어릴때부터 좋아했기에 열심히 공부했고, 그 덕분에 한국에서만 공부한 학생 치고는 괜찮은 영어를 구사한다. 말하기 듣기 쓰기 읽기 네 영역 모두 나쁘지 않은 수준이다. 그런데 영어의 힘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 한국 땅에서 영어가 일상생활에 얼마나 스며들고 있는지를 발견할때마다 한숨이 나오고, 우리말을 지키고 싶은 생각이 든다.
작년 이맘때쯤 영어와 한국어라는 제목으로 글을 하나 쓴 적이 있다. 지금 다시 읽어보니 논리적인 흐름이나 어투가 조금 어색하고 조잡해 부끄러운 글이다. 짧은 글은 아니지만 여기에 붙여보겠다.
내 주위 다른 사람들은 별로 신경쓰지 않는 문제인 것 같지만,
나는 한국어와 영어의 관계가 매우 신경쓰이고 또 어떤 면에서는 흥미진진하다.
중학생 시절이었던 것 같은데, 어떤 시민단체에서 한글 파괴에 앞장서는? 뭐 그런 기업으로 SK를 선정했었다. 이름이 원래 '선경'이었는데 그 글자의 영문 이니셜을 이용한 SK라는 이름으로 회사의 간판을 바꾸었다는 이유 때문이다.
아마 영어와 한국어의 관계에 대한 관념이 그때 그 소식을 접하면서부터 내 머리속에 자리잡기 시작했으리라.
그 후로, 나는 대화 중에 불필요하게 영단어를 섞어쓰는 사람들을 매우 싫어했다.
고등학교 3학년 때는
"그런 제품들이 다 이 사우스 코리아에 넘어오는거야"
라는, 영단어를 섞어쓰며 한숨만 나오게 하는 말을 하는 동시에
"난 그런 거지 발싸개같은 식품들은 없어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라는 수준낮은 한국어 어휘를 구사하는
가정 선생님을 극도로 혐오하여
가정 공부를 한 뒤 일부러 시험을 틀려 13점을 받아냈다.
모르는 문제를 찍었는데 맞아서 13점이 나왔던 것이다.
당시 자신의 교과목에 자부심이 있던 가정 선생님은 나에게 시험지를 보지 않고 OMR카드에만 마킹했냐고 물어봤고, 사실 그다지 용기가 많지 않았던 나는 그냥 그랬다고 대답했다.
그리고 전쟁이 시작됐다.
매 수업시간마다 신경전이 펼쳐졌고, 다른 아이들은 나 때문에 수업분위기가 뒤숭숭해지는 것을 항상 불편해했다.
지금와서 생각해보면 내가 잘못했다. 그 사람은 내가 무엇 때문에 그러는지도 모르는 채 자신의 담당 교과목과 관련된 치욕을 겪어야 했다. 같은 반 친구들은 나 하나 때문에 2학기 한 학기 내내 냉랭한 가정수업시간을 견뎌야 했다.
그래도 당시엔 이런 성찰을 할 수 있는 인격적 수준이 되지 못했다.
대학교 1학년 2학기.
어떤 수업의 어느 교수님은 저때의 가정선생님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영단어를 섞어쓰셨다.
"그런 것들을 도입해서 플랫한 비즈니스 컬쳐를 조성해야 합니다."
대략 이런 정도의 비율로,
'평등한 기업 문화'라는 멀쩡한 우리말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굳이 영단어를 고집하셨다.
수업이 끝난 후, 앞으로 나가 교수님에게 '20살 밖에 안 된 학생이'
그런 말투가 '역겹다고' 했다.
수업 평가에서 영단어 사용을 비꼬는 평가를 장황하게 늘어놓았다.
시험도 엉성하게 봤다.
결과는 C
역시 지금 생각해보면 내가 잘못했다. 나의 생각이 어떻든, 개인적으로 처음 대화해보는 사람과 진지한 대화를 시작한다면 최대한 예의를 갖추고, 또 부드럽게 대화를 진행했어야 했다. 그리고 이미 얘기가 끝난 상황이었다면 그렇다고 받아들이고, 남은 기간동안 열심히 공부했어야 했다.
당시의 난 그럴 정도로 성숙하지 못했다.
그 후로는 영어를 섞어쓴다고 해서 다른 사람과 문제를 일으킨 적은 없다. 사람과 사람이 같이 살다보면 정말 다른 점이 많다는 것을 알게되었고, 또 나의 생각이 그 사람에게는 말도 안되는 생각, 소위 '오바'하는 생각으로 이해될 수 있다는 것도 깨달았다. 그리고 더욱 중요한 사실로, 내가 아무리 노력해도 다른 사람을 바꾸기는 정말 힘들다는 사실까지.
그러나 영어에 대한 개인적인 고민은 지금 이 순간까지도 내 관념이라는 집 안의 장기투숙객으로 머물고 있다.
사람들은 왜 자신들의 일상 대화에서, 글쓰기에서 영어를 섞어쓸까?
원인을 추궁하는 사람은 참 많은 것 같다.
그런데....... 누구도 제대로 된 대안을 내놓지 못한다.
우리들의 머리속에는 이미 한국어가 '어휘 수준'에서 조금씩 자리를잃어가고 있다.
'나'는 me로
'사진'은 picture로
'안녕'은 'hi, hello'로
'미안'은 'sorry'로
'고마워'는 'thank you'로
'새해 복 많이받으세요'는 '새해 blessing 많이 받으세요'.......
마지막 사례는 믿어지지 않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시원스쿨이 올해 설 연휴동안 미디어다음에 올렸던 광고 배너문구였다.
과연 저렇게 대체되어가는 과정이 자연스러운 과정이고 그저 바라만 봐야 하는 과정일까?
글의 흐름을 잠시 깨는 느낌이 들지만, 외래어에 대한 얘기를 잠시 해야겠다. 나는 외래어의 차용은 찬성한다. 그런데 그 전에 전제조건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바로 외국어 개념을 한국어로 바꾸는 진지한 고민을 했는지 여부이다. 도저히 한국어로는 그 개념을 표현할 수 없다는 말은 꽤 많은 경우가 사실이다.
그렇지만, 민주주의. 개인. 철학. 대중. 대통령. 의회. 회의. 산업
이러한 단어들은 한국어로 잘 이식되어 우리의 말글살이에 아직까지도 잘 녹아들어있다.
하지만 또 한가지 문제는 남아있다. 위의 단어들이 대부분 일본을 통해 들어온 일본식 한자어의 한국어식 표기라는 점이다.
가장 극단적인 문제점은 바로 '독일'이라는 국가명이라고 생각한다.
'도이치'라는 소리의 한자식 표기를 위해 獨逸라는 글자가 생겨났고, 이것을 만들어낸 중국/일본 - 어느 나라가 만들었는지 확실하지 않아 두 나라를 썼다. 하지만 두 나라 모두 '도이치'라고 읽는다고 한다 - 의 말을 그대로 들여와서 우리나라만 '독일'이라고 읽는다.
물론 그것을 대체할 만한 능력이 나에게는 없고, 이미 굳어져버린 외래어 개념, 표현들은 나도 쓸 수밖에 없다.
그러나 외국에서 나온 개념, 명칭을 받아들일 때 과연 우리말로 제대로 표현해 낼 치열한 고민을 하는지 우리나라 지식인들에게 묻고 싶다.
다시 글의 본래 흐름으로 돌아오자.
어휘 수준에서 일어나는 한국어 어휘 소멸과정은, 안타깝게도 점차 '관용어, 숙어 수준'으로도 진행되고 있는 것 같다.
'얘기할만한 게 있지?'는 'talking about할만한 게 있지?'
'미안, 샤워하고 있었어'는 'sorry, take a shower하고 있었어'
'나를 완벽하게 보살펴주니까'는 '나를 perfect하게 care해 주니까'
마지막 사례는 숙어 수준이 아니지만, 조사 '하게' 한 단어만 빼면 거의 영어문장이나 마찬가지이기에 추가했다.
내가 보기에 현재 우리나라는 언어적으로 식민지에 가깝다.
영어로 된 책을 읽어낼 능력도 없고, 흔히들 하는 말로 영어로 말 한마디 못하는 사람들이 자신들의 미니홈피는 모두 영어로 꾸며놓는 경우가 정말 많다.
(논리적으로 오류를 범하지 말자. 영어로 모든 메뉴를 꾸며놓는 사람들이 다 영어를 제대로 못하는 사람이라는 말은 절대 아니다.)
그들은 대체 왜 그렇게 하는 것일까?
영어에 대한 복잡한 감정. 소유 - 정복 - 하고 싶은 욕망, 열등감, 혹은 사람에 따라서는 우월감..............
우리나라 사람들이 우리 자신의 말과 글을 소중히 생각하고
우리의 말과 글로 우리의 생각과 감정을 표현하며
우리의 지식을 생산할 수 있는 날이 오길 소망한다.
소망이 간절한 만큼, 내가 지금까지 느껴온 절망은 너무나도 깊다.
현재 이 상황의 끝이 결코 희망적으로 보이지 않기 때문에......
글이 갑자기 뚝 끊겨버리는 느낌이 들어 (혹시라도) 읽을 사람들에게 미안하다.
그렇지만 마무리를 부드럽게 지어내는 능력의 부족이라 생각하고 용서를 구한다. 다음에 다시 이런 글을 쓸 경우엔 마무리까지 고심하여 써 보도록 하겠다.
'한국적 인문학을 해야 한다. 한국의 현실을 직시하고 우리 스스로의 생각, 자기 자신의 생각을 표현해야 한다. 타인의 것을 그대로 갖다 쓴 논문은 배척해야만 한다.
독창적인 생각을 펼친 원전, 고전을 읽어야 한다. 각 분야에서 원전(문제에 대한 독창적인, 자신만의 해결책)을 읽고, 나도 그렇게 나만의 해결책(현실 문제에 대한)을 만들자.'
유시민 현재 국민참여당 경기도지사 후보, 당시 지식소매상의
후불제 민주주의 출판 기념 강연 동영상 2부
'우리나라 사람들은 미국 국민들이 오바마를 대통령으로 선출한 과정을 보면서 미국 국민들이 정말 대단하다고 놀란다. 그런데 그것은 이미 2002년 노사모가 했던 과정이다. (.....)
미국에서 출판되고 있는 현재 민주당의 당론을 담은 책들, 많은 경우가 이미 참여정부 시절 우리가 추진하려고 했던 것들이다. (.....)
우리나라 사람들은 우리나라 것에서 좋은 점을 볼 수 있어야 한다'
(강의를 들을 당시의 내용을 재구성했기에, 사실과 틀린 부분이 있을 수 있다.)
저 글을 쓸 당시보다 지금은 약간 입장이 유연해진 편이다. 언어의 역사를 아주 잘 알고있는것은 아니지만, 천 년 넘게 라틴어가 유럽의 사상계에서 절대적 지위를 유지했던 사실을 생각해보면 어떤 언어가 강한 힘을 가지는 것을 막을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또한 러시아 제국과 일본 제국이 전쟁 후 영어가 아니라 불어로 회의를 진행했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는 영어가 이렇게 절대적 힘을 유지하는것도 언젠가 끝날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이게 바로 조금씩 주관을 잃고 세상과 타협해가는 사고의 흐름이라는 점을 생각해보면 씁쓸하기도 하지만, 워킹 홀리데이 생활을 하며 세상과 나름 부딪치며 살아가다보니 점점 이렇게 변해가는 나를 부정할수 없다.
어쨌든 영어에 대해 비판적인 입장을 견지하는 나조차도 호주에서 영어로 생활을 하다보니 점점 사고방식을 엮어가는 통로에 영어가 자주 끼어들고 있다는걸 느끼고 있다.
자동차 클리너 판매 일을 하던 시절, smog라는 단어를 하루종일 말해야만 했었다. '이 제품으로 화장실 유리를 닦으시면 성에가 끼지 않습니다' 라는 내용을 설명해야 했으니까. 집에 돌아와 같이 사는 형들에게 그걸 설명하는데, smog라는 단어를 우리말로 뭐라고 해야하는지 바로 떠오르지가 않았고, 잠깐 고민하다가 내뱉은 말이 '안개'라는 단어였다. 화장실 유리에 안개라니..
영어가 내 사고의 흐름에 파고들고 있다는걸 처절하게 느낀 순간이었다.
그리고 또 며칠 전, 한국에 있는 친구가 생일이라 생일 축하 전화를 했다. 나는 장난삼아 그 친구가 전화를 받자마자 생일 축하한다는 몇 마디를 영어로 쏟아부었다.
장난삼아 한 행동이긴 했는데, 대체 왜그랬는지 나도 모르겠다.
전화를 끊고 나서 한동안 생각에 잠겼다. '아 내가 대체 왜 그런거지?'
한국인 형들과 살면서 영어가 일상 언어로 자리잡지 않았지만, 일하는 환경에서는 어쨌든 영어를 쓰고 있는 나. 호주 땅에서 살아가는 시간이 조금씩 늘어나면서 영어가 귀와 입에 익숙해지는걸 느낀다. 그러면서 일상적인 대화 속에서 영어가 늘어나고 있다. 동시에 영어가 나를 지배하는 느낌이 들기도 한다. 이런 나를 보면 참 이상하다.
난 분명 일상적인 언어생활에서 영어를 섞어서 쓰는 사람을 무지 싫어했었는데..
순 우리말 개념어를 더 힘있게 보강해서 우리가 홀로 학문을 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는데..
참을 수 없는 영어의 이끌림에 나는 오늘도 조금씩 빗장을 풀고 있다. 그렇지만 한국어와 영어가 섞여버린 이상한 말을 하는 사람이 절대 되지 말아야겠다는 다짐은 계속 지켜나가고 싶다.
지금 이 글을 마무리지을 적당한 문장이 떠올랐는데, 핵심 개념어가 영단어로 표현해야 더 맛깔난 문장이 된다. 이걸 어찌해야하나.... 글을 마무리 지으면서도 또 고민이다.
어쨌든 나는 2개 언어 멍청이(bi-illingual)가 아니라 2개 언어 구사자(bilingual)가 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