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도 리믹스다.

자유게시판2013. 4. 5. 06:28

커비 퍼거슨, 에브리띵 이스 어 리믹스


아리스토텔레스 시학, 모방

셰익스피어 리어 왕 햄릿, 모두 기존의 이야기 변용



씨앤블루, 와이낫 파랑새 표절

애플, 제록스 인터페이스 도용

안드로이드, 아이폰 인터페이스 차용

삼성 갤1, 아이폰3gs 모방


봉구스밥버거


사람들의 반응이 다른 이유는? Loss Aversion & 약자에 대한 심리적 동화




http://boingboing.net/2012/02/26/the-everything-is-a-remix-theo.html


http://blog.naver.com/dolphintree/701641473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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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필을 깎는 손

자유게시판2013. 3. 28. 05:03

나이를 먹어가며 공부를 조금씩 조금씩 많이 하다보니.. 공부할 때는 연필만한게 없다는걸 여러번 느끼게 됩니다. 물론 펜이 필요할 때도 있습니다. 여러가지 색이 필요하거나, 정보를 시각적으로 조직할때는 펜이 적절하지요. 그러나, 차분히 앉아서 공부하는 순간에는 깔끔하게 다듬어진 연필이야말로 저와 가장 잘 맞는 필기구입니다. 특히 전공인 영문과 특성상 해외에서 발행된 페이퍼백 소설을 자주 보는데요, 그러한 책들에 쓰인 종이는 연필과 궁합이 딱 맞아떨어집니다. 볼펜이 남겨놓은 흔적이 종이에 남겨진 상처같다면, 연필이 남긴 흔적은 책이 저와 함께한 나이테와 같이 느껴집니다.

 

저는 지금 덴마크에서 교환학생 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출국 전에 짐을 싸면서, 그렇게나 자주 쓰는 전동 연필깎이를 가져가지 않기로 했습니다. 어차피 칼로 깎을수도 있는 연필인데, 굳이 전동 연필깎이를 가져갈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휴대용 연필깎이를 살 수도 있지만, 칼로 깎으면 된다는 생각에 결국 그것도 준비하지 않았습니다. 


덴마크에 도착하고, 며칠 지나지 않아 연필 끝이 무뎌졌습니다. 연필을 깎으려 휴지 한 장을 펼치고, 칼과 연필을 양 손에 잡아보니... 문득 손으로 연필을 깎아본게 언제인지 궁금해졌습니다. 아무리 생각을 해도 명확하게 떠오르지 않더군요. 초등학생 시절의 어느 장면이 어렴풋하게 기억날 뿐입니다. 아무튼 연필을 깎아야지요. 그런데... 손재주가 어설픈 제가 연필을 깎아보니, 초등학생이 깎아도 이것보다는 잘 하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휴대용 연필깎이를 하나 살까 하는 고민을 잠시 했습니다만, 이렇게나 어설픈 제 손재주를 보고 있자니 한심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앞으로 여기서 지내는 동안 칼로 연필을 깎는 손재주를 키워야겠다는 결심을 했지요.


이곳에 도착한지 딱 두 달이 지났습니다. 연필을 깎는 솜씨도 많이 늘었지요. 아직 사진을 찍어 올릴만한 수준은 아니지만, 처음 칼을 쥐어 깎았던 그날에 비하면 정말 많이 나아졌습니다. 제 손을 거쳐 깔끔해진 연필을 바라보다가, 문득 뜬구름 잡는 생각이 떠올랐습니다. 이건 '제 손을 거친' 결과물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기계 혹은 다른 누군가의 도움 없이, 저의 손을 통해 무언가가 모습을 달리하게 된 상황이라는... 황당한 생각 말입니다. 


나름 스무 해 넘게 필기구를 잡아오면서, 저는 그것들을 한 번도 제 손으로 직접 다듬어본 적이 없었습니다. 아주 어릴땐 부모님과 선생님들이 연필을 깎아주셨을테고,  초등학교 고학년이 되어서는 자동 연필깎이를 사용했고, 중고등학교 시절엔 샤프와 하이테크 볼펜을 사용했고, 그 후에는 전동 연필깎이로 연필을 깎아왔지요. 집을 떠나고 무언가 결핍이 생겨서야, 저는 제 손으로 연필을 깎기 시작했습니다. 손으로 직접 세상을 경험하기 시작한 것이지요. 어디 연필뿐이겠습니까? 집을 떠나 발생한 또다른 결핍, 부모님의 부재는 저로 하여금 스스로 요리를 하도록 강요하고 있습니다^^ 한국에서 부모님과 지낼 때 편하게 해결되던 세 끼 식사는, 이제 하루중 가장 성가시면서도 중요한 일과가 되었습니다. 마트에 가서 장을 보고, 손수 만드는 요리는 연필 깎기와는 비교가 무의미할 만큼 제가 '직접' 하는 일이지요. 물론 직접 식재료를 재배하는 농사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긴 합니다^^ 생각이 여기까지 닿으니, 대체 왜 이렇게까지 내 손으로 하는 일이, 내가 '직접' 할줄 아는 일이 많지 않은가 고민해보았습니다. 


생각보다 결론이 쉽게 나왔습니다. '서비스'라는 개념 덕분인 것 같습니다. 다른 말로 하면 '용역' 이지요. 경제학에서 말하는 그것입니다. 재화와 용역. 구매 가능한 물건과 구매 가능한 행위들은, 그러한 물건과 행위에 얽힌 행동을 우리로 하여금 직접 하지 않도록 유도하는가 봅니다. 구매 가능한 연필깎이는, 칼로 연필을 깎는 행위를 대체합니다. 요리의 경우 부모님의 예는 적절해보이지 않네요. 구매 가능한 요리는 무엇일까요? 어려울것 없습니다. 음식점이 바로 요리를 구매할 수 있는 공간이지요^^ 우리나라에는 참 음식점이 많습니다. 그래서일까요? 우리나라 학생들 가운데 자취생을 뺀다면 직접 요리를 할 줄 아는 학생은 참 드물지요. 그런데, 조금이나마 다녀본 서구권 몇몇 나라들엔 길가 음식점이 너무 없습니다. 다니다 보면 불편할 지경이지요. 그런데 이것이 원인으로 작용해 우리와는 반대 결과를 만들어내는것 같습니다. 제가 만나본 서양인 학생들은.. 20대 초반이지만 왠만하면 조금씩이나마 요리들을 합니다. 부럽기도 하고 신기하기도 하지요.


누군가는 제 이야기를 좋지 않게 생각하실지도 모르겠습니다. 칼도 결국 공산품 아니냐고, 마트에서 식재료를 사는 것도 결국 구매 행위 아니냐고 따져 묻는다면... 사실 할 말은 없습니다^^ 세상이 세상이니만큼, 모든 것을 버리고 자연으로 돌아가서 직접 삶을 꾸려나가자! 이런 주장은 할 수도 없고, 할 필요도 없지요. 제가 하고싶은 이야기는 그렇게 파격적이거나 고색 창연한 이야기가 아닙니다. 넘쳐나는 재화와 용역의 세상에서 잠시 한 박자 쉬면서, 무언가를 우리 손으로 직접 해보자는 이야기를 하고 싶었습니다. 


돈이면 무엇이든 할 수 있다고 흔히들 말하지만, 돈은 딱 그만큼의 자유만을 우리에게 허락하는것 같습니다. 구매의 자유. 구매의 자유만 즐기다보면 자신의 손으로 이루어내는 자유는 점점 외연을 좁혀갑니다. 맛있는 요리도 할 수 없고, 연필 끝이 무뎌졌을 때 연필심을 날카롭게 하지도 못하지요. 세월이 흐를수록 구매의 자유 아래로 종속되어가는 삶의 자유가 많아지는 것 같습니다. 이러한 상황을 여유롭게 지켜보는 분들도 계시지만, 불편하게 바라보는 분들도 많이 존재합니다. 돈이 우리 삶에 개입하는 현상은 날이 갈수록 뜨거운 논쟁거리가 되어갑니다. 일례로 마이클 샌델의 『돈으로 살 수 없는 것들』에서 다루어지는 소재들은, 사실 '돈으로 살 수 없는 것'은(즉, 그러한 사건의 발생이 원천적으로 불가능한 것은) 아니지요. 다만 돈으로 거래될 때, 우리를 불편하게 만드는 것들이 대부분입니다.


안타깝게도, 구매의 대상은 시간이 갈수록 다양해져만 갑니다. 마이클 샌델이 한국에 왔을 당시 열렸던 무료 강연조차 암표가 거래되었다고 하지요... 상황이 이렇더라도, 저는 이야기하고 싶습니다. 실제 삶을 우리의 손으로 직접 만나자는 이야기를요. 실제 우리의 삶을 구성하는 경험은 결국 손과 발을 거쳐서, 감각을 거쳐서 우리에게 다가옵니다. 구매의 자유 아래로 자꾸만 숨어들어가는 우리 생활의 자유를 하나씩 하나씩 찾아보는건 어떨까요? 저는 앞으로 평생 연필을 제 손으로 깎을 결심을 했답니다. 우리나라에 계신 여러분들은.. 곧 다가올 벚꽃을 상쾌한 마음으로 만나러 가는건 어떨까요? 번거롭겠지만 도시락을 직접 싸보기도 하고, 흩날리는 벚꽃잎 사이로 자전거를 타고 지나가보는것도 좋을것 같습니다. 


인터넷 글 치고는 장문의 글인데,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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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큐멘터리 3일, 아마르 꼬레아-칠레 Kpop콘서트 방송을 보고

자유게시판2012. 9. 3. 01:15

장을 보태서 말하자면, 단군 이래 아주 최근까지 이놈의 반도에서는 한 번도 '문화'를 제대로 수출해본 적이 없다. 문화 가운데서도 특히 큰 파급력을 지니는 대중문화는 더더욱 그래본 적이 없다. 한국사를 최대한 자랑스럽게 서술하는 중고교 국사교과서에서도 문화나 학문 수출에 관한 내용은... '우리 조상들이 사실은 일본에 문화를 전달해줬다더라' 정도.아주 가끔 예외적인 사례로 최치원같은 인재가 언급되기는 하지만, 알고보면 현시창[각주:1].오바하느라 국사교과서 얘기까지 꺼내봤다. 입론은 여기까지.


랬던 우리가 최근 몇 년간 다른 양상을 보여주기 시작했다. SM 소속 가수들이 동남아시아에서 인기를 얻기 시작하더니, 박진영이 그전과는 다른 각오와 실천력으로 원더걸스를 미국시장에 데뷔시켰다. 이어진 일본 대중음악계 진출 소식. 박재범&2PM사건 당시 세계 각국의 팬들이 소셜미디어를 이용해 표출한 재범 지지선언. 영국,프랑스,호주 등 서구권 국가에서 개최된 Kpop콘서트. 그리고 강남스타일의 등장.


http://www.businessinsider.com/gangnam-style-k-pop-google-youtube-twitter-2012-8

미국 IT전문 온라인매체 비즈니스 인사이더에서는 최근 강남스타일을 주목하고 있다. 

최근 2주간 강남스타일을 다룬 기사가 네 건이다. 한 건은 단순히 아래 영상을 소개하는 기사.




2012 MLB 포스트시즌을 알리는 FOX채널 공식 광고....는 아니고 어느 MLB덕후 팬의 작품.


'강제 한류 진출'이라는 말처럼 싸이 본인은 좀 피곤해하는것 같기도 하다...




러나 이가 전세계적으로 히트를 치는 와중에도, 나는 Kpop이라는 '문화'가 세계적으로 뻗어나가지는 못할 것이라고 예측했다. 우리나라에서 한때 일본 락음악이 충실한 마니아층을 확보했던것처럼, 잘 해봤자 바로 그 만큼의 영향력을 발휘할게 뻔하다고 생각했다. 사실 강남스타일 이전에 이루어진 아시아 외부의 한류 진출은 우리나라 언론이 과대포장해 광고한 면이 분명히 있었고[각주:2]나에게 있어 Kpop이 해외에서 잘나간다든지, 한류열풍이 불고 있다든지 하는 소식들은 이렇게 정리되었다 - 어느 정도 유행인건 알겠는데, '그쪽 동네의 오타쿠 문화' 정도이고 강남스타일은 그냥 예외. 아주 아주 아주 예외. 나뿐만 아니라 많은 사람들도 Kpop 열풍의 실체를 좀처럼 믿지 않았다. 


좀 험악한 예를 들자면...

일베는 여러모로-좋은의미 안좋은의미 다 포함해서- 대단한 곳이다.



런데 오늘 KBS2TV 다큐멘터리 3일(아마르 꼬레아-칠레 Kpop콘서트) 방송을 보고는 생각이 조금 바뀌었다.














이 방송을 보는데, 문득 오래전 들었던 노래 하나가 떠올랐다. 

<배치기 1집 - Jackson 5>

아마도 중3 때였을껄? 시험을 망쳐 기분이 슬퍼있고
그렇다고 술퍼먹을 내 나이도 아니고
라디오를 무심코 틀었는데
Wu-Tang Clan 음악이 나오는거야 글쎄
그 한 곡이 끝나자 마자 내 가슴은 두근두근 뛰며
우리반 1등 보다 더 큰 희열을
맛봤었지 숨은 가빠졌지
그 설레임은 후에 겪은 첫사랑 보다 더

(...)

빡쎈 밤샘 작업에 지칠때 난 생각해
알아 들을 수 없는 그 지껄임의 위대함을 말야
그때의 그 4분에 난 지금 펜과 씨름하고 있으니까
이 글자들은 곧 내 입을 거쳐
거침없이 어느 누군가의 귀에 파고 들어가겠지?
그때의 그 설레임 누군가 느낄 수 있길 혹시 알아? 그 사람에겐 내가 Wu-Tang[각주:3]이될지

(곡 듣기 새 창 바로가기 클릭)

(한때 힙합 덕후였던게 여기서 드러나는구나ㅜㅜ)


K-pop이라 불리는 우리나라 가요는 해외 시장에 진출하기 시작한지 오래 되지 않았다. 아무리 길게 잡아도 본격적인 현지 대중가요 시장에 편입되기 시작한 건 10년이 채 되지 않는것 같다. 당연히 인지도가 낮을 수밖에 없고, 하나의 사회에서 주류문화로 편입되기는 힘들다. 우리나라에서도 수많은 사람들이 미국 드라마, 일본 드라마의 여러 장점을 주변인들에게 설파하지만, 정작 한국 영상물 문화의 중심은 TV 드라마와 한국 영화인 것과 비슷한 이치라고 생각한다. 위에서도 밝혔지만, 나는 Kpop이 해외 시장을 평정했다든지, 한류 열풍이 해외 문화계를 점령했다든지 하는 기사에 큰 신뢰도를 느끼지 못한다. 사실이 아닐 게 뻔하다고 생각하니까. 


런데, 가만 생각해보니 우리가 언제 우리의 '문화'를 수출해본 적이 있던가? 이 땅의 학문과 문화계는 유구한 역사를 자랑하며... 다른 곳의 앞선 학문과 문화를 수입하고 이해하는데 바빴다. 방송을 보며, 마냥 수입만 하던 우리가 문화를 수출하고 있다라는 현상을 떠올릴수 있었다. 그러자 Kpop과 한류가 마냥 우습게 보이지 않았다. 여기서 국위선양이라는 단어는 별로 쓰고 싶지 않다. Kpop 열풍은 한국이라는 나라가 알려지는 과정이기도 하지만, 그 자체는 중요하지 않다고 보기 때문이다. 배치기가 누군가의 Wu-tang Clan이 되었는지는 아직 확실하지 않지만, 한국의 문화계가 다른 나라의 어떤 곳에서 아주 작게나마 문화 전파자로서의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은 확실해졌다. 다시한번 강조해야겠다 - 아주 작게나마 전파하고 있다. 국내에서 아이돌 음악을 어떻게 평가하든, 한국의 아이돌은 해외 각지에 흩어져있는 그 누군가에게  Wu-tang Clan이 되었다. 반만년 역사를 통틀어 제대로 성공해본 적이 거의 없는 대중문화의 전파자 역할을 우리 나라는 이제 미약하게나마 시작한것 같다. 


*덧붙임 1. 역시 글쓰기는 보통 일이 아니다. 자고 일어나서 다시 읽어보니 내가 표현하고자 하는 생각의 둘레가 명확하게 표시되지 않은 느낌.

*덧붙임 2. 다른 사이트에 올렸다가, 유로댄스의 카피에 불과하다는 댓글을 받았다. 본문에도 은근히 드러나는 뉘앙스인데, 나도 Kpop의 독창성이나 그것이 진정한 한국 음악이라거나.. 하는 생각에는 동의하지 않는다. 다시한번 확인했다. 말은 말을 낳는다. 한 번 글을 쓸 때는 예상가능한 반론과 그에 대한 재반박을 꼭 같이 써야겠다.

*덧붙임 3. 게임산업의 수출을 아예 생각도 못했다. 우리나라 문화를 수출해본 적이 없다는 부분에 대한 수정이 필요.







  1. 최치원은 빈공과에 급제한 후 2년간 관직이 나오지 않아서 허송세월을 하면서 서류대필과 저술활동으로 끼니를 때우다가 겨우 선주 율수현의 현위에 임명이 되었으나 이듬해 사퇴한다. 빈공과 자체가 외국인을 대상으로 하는 과거다보니 여기 급제해봐야 제대로 된 대우를 받을 수 없었고, 당시 당의 사정이 그렇게 만만한 것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참고:http://rigvedawiki.net/r1/wiki.php/%EC%B5%9C%EC%B9%98%EC%9B%90 [본문으로]
  2. 지난 5월에 방송된 mbn 시사기획특집 한류본색을 검색해보자 [본문으로]
  3. 혹시나해서 각주 하나. 리쌍의 개리도 힙합음악에 처음 빠지게 된 계기가 우탱클랜의 멤버 메소드맨의 뮤비를 본 것이라고 작년 Ceci 인터뷰에서 말했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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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제

자유게시판2012. 2. 17. 11:22
잠을 깨기 위해 커피를 한 잔 마신다. 아무것도 넣지 않은 진한 에스프레소 한 잔. 처음 에스프레소를 접해본게 언제였더라? 정확한 때는 기억나지 않지만, 첫인상이 어땠는지는 어렴풋이 기억난다.

함부로 주문하면 안 되는 음료.

난생 처음 보는 작은 잔에 색과 향이 모두 진한 액체가 나왔었는데, 주문을 한 엄마와 이모는 모두 황당해했다. 아마 잘 모르고 주문을 하셨거나, 실수를 하셨나보다. 나랑 동생이 무얼 마시고 있었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이렇게 기억이 흐릿한걸 보니 적어도 고등학교에 들어가기 전의 일인가보다. 10여 년의 시간이 지나 이제는 내 앞에 놓인 에스프레소. 여기까지 쓰고 보니 졸음이 싹 가셨다. 에스프레소 덕분인지 글쓰기 덕분인지는 잘 모르겠다. 카페인에 내성이 생겨버린건지 요즘은 커피를 마시고도 잠드는 일이 종종 있으니까.
아무튼, 햇살 좋은 날 커피 한 잔과 시작하는 하루는 괜히 기분이 좋아진다. 이제 에스프레소는 어렵지 않게 주문해도 되는 음료다. 어디 에스프레소 뿐이랴, 다른 커피들도 더이상 어렵지 않다. 카페 라떼, 카푸치노, 마키아또, 샷 추가해주세요, 파우더는 괜찮아요... 나이를 한 살 두 살 먹어가면서, 알지 못하는 것들에 대한 두려움은 한 겹 두 겹 떨어져나간다. 알기 때문에 두려워지는 때가 많아져서 문제긴 하지만...
 
기분좋게 시작한 글인데 갑자기 씁쓸해졌다. 아, 에스프레소 맛도 씁쓸했었지. 여러모로 사는 게 꼭 커피같다. 일단 다양해서 어려워보인다. 알고 나면 별 거 없는듯하면서도, 알면 알수록 좀 씁쓰름하다. 겨우 스물 다섯살이 이렇게 말하니 내가 읽어도 좀 같잖긴 하지만, 씁쓰름한걸 어쩌랴. 점심을 먹고 나서는 달짝지근한 커피를 마셔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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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 투더 퓨쳐!

자유게시판2011. 8. 26. 22:22

누구든지 자기 자신에게 가장 기억에 남는 영화가 있게 마련입니다. 저에게는 두 시리즈가 그러한데요, '백 투더 퓨쳐' 시리즈와 '매트릭스' 시리즈입니다. 오늘은 백 투더 퓨쳐에 대해 이런저런 이야기를 좀 해볼까 합니다.

요즘은 언제 어디서나 인터넷에 접속할 수도 있고, 또 보고싶은 영화가 있다면 거의 모두 찾아서 금방 다운로드받아 볼 수 있습니다.(불법일지라도요^^..) 90년대에는 사정이 달랐었죠? 보고싶은 영화가 있다면 1.영화관에 가서 보거나 2.비디오대여점에서 테이프를 빌려보거나 3.방송 시간표를 미리 확인하고 TV앞에서 기다려야만 했습니다. 저는 당시 매주 방송되는 영화 프로그램들을 챙겨봤던 기억이 납니다. 기대되는 영화는 꼭 비디오테입에 녹화한 후 몇번씩 다시 보곤 했는데, 지금 기억나는 또다른 영화는 '스타쉽 트루퍼스'가 있네요^^

대체 언제 이 영화를 처음으로 본건지 정확히 기억나지는 않지만, 어느 날엔가 이 영화를 보고야 말았습니다. '백 투더 퓨쳐!' 

File:Back to the future.jpg
(1985년 개봉했으며 당시 미국에서 8주간 박스오피스 1위를 했더랍니다~) 


어느 방송사에서 내보낸걸 처음 봤는지 모르겠지만, 아마 1편부터 3편까지 몰아서 방송을 했나봅니다. 3일에 걸쳐서, 혹은 3주간 연속으로였겠죠? 위에서 말했다시피 대체 언제 이 영화를 처음으로 봤고, 또 몇번이나 다시 봤는지는 모릅니다. 아마 셀 수 없이 많이 봤을겁니다. 녹화해놓은 테이프로 보고, 언젠가 또 방송하던걸 챙겨봤던 기억도 납니다.

영화가 우리에게 무엇을 주는걸까요? 많은 대답이 나올수 있겠지만, 저는 한 영화정보 사이트의 한마디에 가장 마음이 끌립니다. 

영화… 끝나지 않는 꿈 

누군가는 아무 생각없이 영화를 보고, 누군가는 넘치는 시간을 주체하지 못해 영화를 보고, 누군가는 영화 한편으로 인생이 송두리째 바뀌기도 합니다. 저는 분명 아무 생각없이 그냥 매주 방송되는 영화들이 좋았습니다. 수많은 영화들 가운데 아마 백 투더 퓨쳐는 저에게 꿈을 심어주었나봅니다. 모두들 한번쯤 꿈꾸어봤을 '시간여행'을 매력적인 스포츠카와 탄탄한 스토리를 바탕으로 영상으로 보여준 이 영화는 저뿐만 아니라 전세계 수많은 사람들에게 꿈을 심어준게 분명합니다. 1985년에 개봉했던 이 영화는 지금까지도 공식 팬페이지가 운영되고 있으며, (http://www.bttf.com/ 그리고 http://backtothefuture.wikia.com/wiki/Main_Page 이런 페이지도 있군요..) 아마 저처럼 영화가 개봉된 후에 태어났을지도 모르는 개발자들에 의해 게임으로도 만들어졌습니다. 개봉 25주년을 맞이해 블루레이 디스크로 재발매가 이루어지기도 했구요.

아직까지도 많은 사람들이 이 영화를 사랑하는걸 보면, 영화 자체만으로도 분명히 훌륭한 작품입니다. 그리고 저에겐 특히나 더 이 영화를 간절히 바라게 만든 사건이 있었습니다. 보통 가정집에 녹화용으로 쓸만한 비디오테입이 많아봐야 얼마나 많았겠습니까..
이 영화를 녹화해놨던 테이프에 실수로 다른 영상을 녹화해버렸습니다. 말 그대로 '실수'였습니다. 덮어씌워진 영상은 바로..  "참 쉽죠?"의 주인공 밥 로스의 미술프로그램이었습니다 ㅜㅜ
너무나 보고싶은 영화인데, 실수로 그 위에 "참 쉽죠?"를 녹화해버리는 바람에 볼 수가 없게된 상황.... 리모콘을 잘못 누른 저 자신과, 아무 잘못없는 미술 프로그램을 참 많이 원망했던 기억이 납니다ㅋㅋ 보고싶은 마음과 볼수없는 현실이 합쳐져서 이 영화에 대한 저의 간절함이 더욱더 커졌었나봅니다.

그리고 몇년 후, 백투더 퓨쳐 시리즈가 dvd로 국내에 처음 발매된다는 소식을 접했습니다. 당시 중3이었던 저는 dvd를 구동할수있는 기계가 전혀 없었는데요...
5만원짜리 dvd세트를 보기 위해 컴퓨터용 dvd-rom을 구매했습니다. 중학교 3학년때니까 용돈을 모아서 샀거나 부모님에게 부탁을 했겠죠? 2003년엔 dvd-rom이 절대 싼 가격에 팔리지 않았을테니.. 이 영화가 대체 뭐길래 저를 그렇게까지 만들었던걸까요? 



그런데 굳이 이 글을 왜 지금에서야 쓰느냐..

멜번에서 워킹홀리데이 생활을 하는동안, 이상하게도 백 투더 퓨쳐를 다시 만날 기회가 많아졌습니다. 
3월 26일 이민자 박물관을 구경하고 나와서 기념품 상점에 들어갔다가.. 매년 중요했던 일들을 기록해놓은듯한 dvd시리즈를 발견했습니다. 별 생각없이 돌려보던중..

'어!!??'


"마이클 j 폭스가 혹시 호주출신인가?"라는 생각에 집에 와서 검색해보았지만 그는 캐나다 출신이더군요.. 아무튼 이렇게 뜻밖에도 백투더퓨쳐를 호주땅에서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며칠 전 길을 걷다가 처음 보는 헌책방을 발견했고, 왠지모를 이끌림을 느껴 들어갔습니다. 그런 느낌에 이끌려 들어갔던 헌책방에서 발견한 책이 바로...

(Norwegian Wood 상실의 시대는 일반 서점에서 샀습니다^^;)

맨 오른쪽을 봐주시기 바랍니다. 소설화되어 있다는 사실 자체를 전혀 몰랐었는데, 난생 처음 들어가본 헌책방에서 백 투더 퓨쳐 소설을 발견했습니다! 

게다가 오늘은..

우연히 알게된 The Daily What이라는 사이트에서 브라운 박사의 영상을 보게 되었습니다!
http://thedailywh.at/2011/08/25/volver-al-futuro-themed-viral-ad-of-the-day/



 아르헨티나 가전제품 판매점 CF라고 하네요~

작년에는 25주년을 기념하며 출연진들이 다시 모여 TV쇼에 나오기도 했네요!



참 이상하게도 멜번에 와서 자꾸만 백투더 퓨쳐를 만나게 됩니다.


시간여행이라는 꿈, 그리고 영화에 대한 꿈을 동시에 저에게 안겨주었던 이 영화. 계속해서 이렇게 제 삶의 한 장면 한 장면 추억을 선물해주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 기분이 좋아지는 밤입니다. 
이 글을 읽고계신 여러분들은 어떤 영화에 무슨 추억을 갖고 계신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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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업에 귀천이 없는가?

자유게시판2011. 7. 18. 14:39

*2011년 7월 18일에 처음 쓰기 시작했던 글인데, 이제서야 마무리지으려 합니다 (2013년 2월 20일) *


'직업에 귀천이 없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사실인지 아닌지 쉽게 판별하기 힘들지만, 사실이라고 믿는 사람도 있고 아니라고 믿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러나 솔직히 터놓고 말해, 상이한 직업에 대해 우리가 느끼는 인상이 달라지는 것은 자명해보입니다. 
'공인 회계사'와 '건설 노동자' 사이에는 메꾸기 힘들어보이는 큰 간격이 느껴집니다. '좋은' 직업이라는 인상과 '좋지 않은' 직업이라는 인상 말입니다.

저는 사실 2년 전 호주 멜번에서 직업 청소부였습니다. 청소일을 하던 당시, '직업에 귀천이 없다'라는 말은 사실로 느껴졌습니다. 하나의 도시가 제대로 유지되기 위해서는 다양한 직업을 가진 사람들이 각자의 일을을 수행해야만 합니다. 결국 넓은 관점에서 보자면 모든 직업은 동등하게 '필요'한 직업인 셈입니다. 

저는 두 군데에서 청소일을 했었습니다. 집 근처의 이탈리안 레스토랑과, 집에서 2km정도 떨어져있는 건물의 화장실입니다. 하루종일 요리사들이 음식를 만들면서, 손님들이 식사를 하면서 레스토랑은 여기저기 더러워집니다. 하루종일 회사원들이 볼일을 보면서 건물 화장실은 더러워집니다.어떤 장소를 누군가가 지저분하게 만들었다면, 더러워진 장소는 깨끗해져야할 필요가 있습니다 누군가가 더럽혀놓은 장소를 치우기 위해 저는 매일 일을 했습니다. '필요성' 하나만 집중해 생각해본다면, 청소부는 정말로 필요한 직업입니다.

필요성을 기준으로 직업의 귀천을 정하기는 어려운듯 합니다. 청소부는 반드시 필요한 직업이지만, 그 외 모든 직업도 당연히 필요합니다. 대한민국의 대학생의 일상을 생각해볼까요? 통학을 위해서 대중교통을 운전해주시는 분들이 필요합니다. 강의를 진행해주시는 교수님들도 필요하고, 각종 사무업무를 처리해주는 행정실 직원도 꼭 필요하고, 수업이 끝난 후 친구들과 술한잔 하기위해 술집 사장님과 술집 아르바이트생도 꼭 필요합니다. 

'필요성'을 기준으로 생각해보고 있습니다. 이러한 관점에서 세상 모든 직업은 반드시 필요한 직업이며, 결국 상이한 직업들 사이에 위계 차이는 발생하기 어렵습니다. 이렇듯 '필요성'의 관점은 우리가 알게 모르게 느끼는 직업에 대한 상이한 인상들에 변수로 작용해, 그러한 인상들을 뛰어넘어 모든 직업이 동등하다는 결론을 낳습니다.


그런데 실제 우리의 삶을 들여다보면 상황이 그리 간단하지 않습니다. 한국 사회의 직업 지형도는 정규직과 비정규직으로, 혹은 고소득자와 저소득자로 양극화되어가는 양상을 보이고 있습니다. 사람마다, 직업마다 급여에 차이가 발생하는 것은 나쁜 일이 아닙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그 차이가 심해지자 슬퍼하기 시작했습니다. 이 상황에서 직업에 귀천이 없다는 말은, 실체 없는 담론들 가운데 하나일 뿐입니다. 문제가 되는 것이 무엇인가 생각해보았습니다. 제가 느낀 문제점은 바로 '공동체가 각 직업에 대해 어느 정도의 보상을 해주는가' 입니다.

어떠한 직업이든, 일을 한 사람은 그에 대한 보상으로 급여을 받습니다. 급여를 통한 보상 자체는 자본주의 원리를 받아들인 세계 각국의 보편적인 현상입니다. 보편적 현상이 특수성을 띄는 부분이 바로 보상으로서 주어지는 급여의 수준입니다. 이는 나라마다, 도시마다, 공동체마다 달라집니다. 동일한 직업을 가진 사람일지라도 어느 곳에서는 A만큼의 액수를, 다른 곳에서는 B만큼의 액수를 받을수 있습니다. 이는 해당 사회가 특정한 직업에게 어느 정도의 보상을 해줄 것인지에 대한 합의가 다르기 때문에 나타난다고 생각합니다. 쉽게 말해 '연봉이 얼마인가' 문제입니다. 이는 위에서 언급한, 상이한 직업에 대해 우리가 느끼는 상이한 인상의 간극, 다시말해 '좋은/좋지 않은' 직업이라는 '인상의 차이'에 또다른 변수로 작용합니다 '얼마나 돈을 잘 버는가'라는 변수입니다. 한 가지 더 고려할 사항이 있습니다. 급여의 차이는 절대적 차이 자체로도 유의미하지만, 해당 사회의 물가가 어느정도인지가 더 중요합니다. 월 소득 100만원으로도 기본적인 생활 유지가 가능한 물가의 사회가 있는 반면, 월 소득 200만원은 되어야 기본적인 생활 유지가 되는 물가의 사회도 있는 법입니다.

'필요성'이 설명해주지 못하는 부분이 여기에서부터 설명됩니다. 필요성의 기준으로만 생각한다면, 인상으로서 느껴지는 '좋은/ 좋지 않은' 직업의 차이는 상쇄됩니다. 그러나 인상의 차이가 실질적 귀천의 차이로 나아가는지 여부는, 특정 사회가 특정 직업군에게 기본적인 삶의 수준을 허락하는 급여를 제공하는가에 달려있다고 생각합니다. 여기에는 절대적 급여의 차이와 함께, 상대적 물가의 차이도 반드시 고려되어야만 합니다.

제가 겪은 호주 사회에서, 청소부나 건설 노동자는 결코 낮은 지위의 직업이 아니었습니다. 한 시간 노동의 대가는 한국 돈으로 환산하면 아무리 적게 잡아도 2만 7~8천원에서 시작해 높게는 5~6만원을 상회합니다. 육체적 피곤함을 담보로 하지만, 노동을 통해 받은 급여는 해당 직업인과 그의 가족들이 풍족한 삶을 유지하는데 전혀 부족함이 없습니다. 물론 한 건의 예외도 없는 것은 아닙니다. 칠레 출신의 청소부는 자신의 직업을 'shitty job'이라고 표현했습니다. 천한 직업이라는 자의식이었습니다. 이러한 예외를 제외한다면, 길거리에서 보았던 청소부와 건설 노동자들의 일상은 매우 당당해보였습니다. 그들이 받는 적정선의 급여와 그것을 통해 가능해지는 일과 후 여유로운 생활은 불현듯 느껴지는 '힘든 직업'이라는 인상을 아주 쉽게 무력화시켰습니다.

저는 지금 교환학생으로서 덴마크에 거주하고 있습니다. 교환학생이라는 신분의 한계와, 덴마크어를 모른다는 언어의 한계상 저는 이곳에서 직업과 급여, 공동체가 상이한 직업들에게 어떤 보상을 지급하는지를 피부로 완연히 느끼기는 어려울거라 생각합니다. 그래도 호주에서 피부로 느꼈던 그만큼, 이곳에서는 머리와 지식으로나마 알고 돌아가겠다고 다짐합니다.

대한민국 사회로 눈을 돌릴때가 왔습니다. '필요성'을 기준으로 생각한다면 대한민국 사회에서도 청소부는 반드시 필요한 직업입니다. 그러나 우리 사회는 과연 그들에게 어느 정도의 삶을 허락하고 있는지 진지하게 고민해야한다고 생각합니다. 알게모르게 느껴지는 '좋은/ 좋지 않은' 직업이라는 인상은, 안타깝게도 급여의 차이로까지 영향을 미쳐 해당 직업에 대한 인상을 고착화시킵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직업에 귀천이 없다'라는 표현은 공염불에 지나지 않습니다. 한국 사회에서 기본적인 생활 유지를 위해서는 어느 정도의 돈이 필요한지, 그리고 우리는 과연 공동체 구성원들에게 기본적인 생활 유지를 위해 어느 정도의 보상을 할 준비가 되어있는지 다같이 생각해봐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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