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주의 색깔을 묻는다』 흑백과 빨간색을 넘어서기 위하여.

독서기록2013. 2. 21. 03:56

*2010년 12월 26일 작성했던 글입니다*

민주주의 색깔을 묻는다 - 불안의 시대를 건너는 청춘들에게
손석춘 지음 / 우리교육 / 2010년 4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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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오랜만에 리뷰를 쓴다. 지금와서 돌아보면, 그리고 한 발짝 떨어져서 생각해보면 별 일 아니었던 문제들때문에 9월부터 최근까지 많이 힘들었고 방황했다. 11월 말부터 다시 일어서겠다고 다짐했지만, 한 달이 지난 지금까지도 '잉여력'이 잔존하고있다. 이 리뷰를 쓰면서 얼마 안 남은 그 기운을 떨쳐낼 수 있다면 좋겠다. 

이런 책을 들여다볼 만한 독자들이라면 당연히 알고 있겠지만, 우리나라는 해방 이래 흑백논리와 색깔공세로 점철된 역사를 자랑(?)한다. 그러나 1945년 해방정국 시기부터 시작된 흑백과 빨강의 협공은 차차 줄어들었으며, 1987년에는 절차적 민주주의를 우리에게 양보했다. 

하지만.. 너무나 강렬했던 소망이 '표면적으로' 한순간에 이루어진 탓일까? 그 후 민주주의 논의는 왠지모르게 낡아빠진 인상을 풍기는 논의가 되어버렸고, 사람들은 민주주의를 지키고 가꾸어가는 것에 대해 무관심해지기 시작했다. 민주주의가 어떻게 되든 사람들이 크게 신경쓰지 않으며 시간을 보냈고, 2008년 보수정권이 정권을 다시 잡게 되었다. 그제서야 사람들은 그동안 당연하게 받아들였던 민주주의가 사실은 표면적으로만 보장되어왔다는 점을 깨닫기 시작한 것 같다. 

바로 그런 흐름을 따라 2008년부터 민주주의를 다루며 고민하는 많은 책들이 쏟아져나왔고, 지금 다루고 있는 이 책도 그 연장선상에 있다고 생각한다. 

전체적으로 참 읽기 쉽게 쓰여졌다. 머리말에 명확하게 밝히고 있듯이 10대가 읽을 수도 있도록 쉽게 쓰여졌다. 그러나 다행히도 쉬운 와중에 명확한 문제의식을 놓치지 않았다. 특히 칭찬하고 싶은 점은 '여는 글'이 사람들의 시선을 확 끌어모을 만큼 잘 썼다는 점이다. 자기계발 서적의 대부라고 할 만한 『성공하는 사람들의 7가지 습관』을 간접적으로 언급하며 시작하는데, 그 책에서 제시한 '원칙'을 정립하고 그에 따라 살기 위해 노력했던 나로서는 눈에 확 들어올 수밖에 없었다. 꼭 해당 책을 언급했기 때문에 눈에 들어온다는 것은 아니다. 넘쳐나는 자기계발 메세지 속에서 살고 있는 우리 모두가 흥미를 느낄 만한 '여는 글'이다.

이어지는 본문은 모두 7장으로 이루어져 있다. 앞서 언급한 '7가지 습관'에도 대응되며, 또 닫는 글에서 마무리하듯 '무지개'를 상징하기도 한다.  

각 장은 민주주의가 얼마나 우리 삶에 직접&간접적으로 연관되고 있으며, 또 그러한 민주주의를 지켜나가는 것이 힘들지만 가치있는 일이라는 주제를 인생, 싸움, 대화, 정치, 경제, 주권, 사랑이라는 소재를 통해 풀어나간다.  

특히 마음에 들었던 부분은 5장 '민주주의는 경제다'와 이어지는 6장 '민주주의는 주권이다'였다. 

  
 

(168쪽)정치와 경제를 나눠서 대학에서 전혀 별개로 가르치고 서로 연관성이 없는 듯 사고하게끔 만드는 것은 누군가의 치밀한 노림수입니다. 누구일까요? 현재의 경제 질서가 흡족한 사람들입니다. 바로 그렇기에 우리는 민주주의가 정치인 동시에 경제임을 꿰뚫어 보아야 합니다. 누구를 위한 정치 경제 체제인가를 꼼꼼히 살펴야 할 이유가 여기 있습니다.

 
  

10대들이나 분별력이 부족한 일부 독자들이 자칫 심각한 음모론으로 독해할 수도 있는 부분이지만, 꼭 틀린 말도 아닌것 같다. 실제로 고전경제학을 집대성했다고 평가받은 밀의 역작은 제목이 '정치경제학 원리'였다(원저명 Principles of Political Economy).    

 

 

  
 (188쪽)노동자는 여러 직업으로 나누어지지만 분명히 짚어 둘 게 있습니다. 국민 대다수가 노동자로 살아간다는 사실이지요. 일터에 나가 일(노동)을 하고 월급(임금)을 받는 사람, 바로 그 사람이 '노동자'이니까요. 흔히 '노가다'로 불리는 "가난하고 불쌍한" 일용직 노동자만 노동자가 아니죠. 
  

 

얼마전 친구들과 얘기하다가 나온 말인데, 우리나라 보수층의 교육 정책과 교육 내용 장악이 참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마음에 드는 내용은 아니지만, 그들 입장에서 본다면 참 대단한 성공 아닌가? 사회복지의 개념과 유형, 그리고 시장과 국가의 관계에 대해 제대로 배우지는 않지만 학생들은 딱 한 단어로 복지 축소가 올바른 정책이라는 인상을 받게 된다. '복지병'.  
교실에 앉아있는 30여 명의 학생들 중 절대다수가 노동자의 삶을 살아갈 것이지만, 노동자라는 단어에 어느샌가 부정적이고 힘든 일생을 살다가는 그런 인상을 성공적으로 입혀놨다. 노동이라는 단어를 들었을 때, '노가다'와 '막일'을 떠올리는 데에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는다. 본문에도 언급되는 내용인데, '대학 가서 미팅할래, 공장 가서 미싱할래'라는 급훈을 듣고 공부하는 아이들은 생각이 어떻게 될 지는 깊이 생각해보지 않아도 될 듯하다. 
 
누구에게나 추천할 만한 책이다. 진보와 개혁을 바라는 나같은 독자는 즐거운 마음으로 편히 읽을 수 있는 책이며, 자신을 중도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약간 불편하지만 큰 무리 없이 읽으며 자신의 시각을 조정하 수 있는 책이며, 스스로 우파 혹은 보수라 생각하는 사람들은 좀 더 불편하겠지만 화나지 않을 정도로 '그들'의 이야기를 받아들일 수 있는 책이다. 누가 읽더라도 마지막 장까지 읽고 나면 민주주의에는 적어도 일곱 빛깔이 있다는 사실을, 그동안 흑백과 빨강이 얼마나 우리 삶과 민주주의를 옥죄어 왔는지를 알게 될 것이다.
 

* 전문을 아우르는 이 책의 또다른 특징이 있는데, 바로 순우리말의 적극적인 사용이다. 이 책을 한 번 정독한다면 전에 알지 못했던 순우리말을 적어도 두 단어 정도는 알게 될 것이다. 

 

읽은 기간 : 2010년 12월 20일 ~ 2010년 12월 25일  

정리 날짜 : 2010년 12월 26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