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 동양신화 중국편 』 - 동양적 상상력의 매력을 찾는 첫걸음

독서기록2013. 2. 21. 03:58


이야기 동양신화 중국편 - 신화학자 정재서 교수가 들려주는
정재서 지음 / 김영사 / 201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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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세상을 살아가는 동안 필요한 물건들이 정말 많다. 가장 원초적으로는 먹을 것, 입을 것, 지낼 곳이 필요하다. 그리고 기본적인 욕구가 충족되면 다음으로 여러 가지 바라는 것들이 생기기 마련이다.  

잘은 모르겠지만, 그러한 욕구들 중에는 아마 '이야기'를 만들어내고 또 듣고 싶어하는 욕구도 있나보다. 흔히 주변 어른들이 어린 시절을 회상할 때 등장하는 단골 장면이 바로 할머니나 할아버지가 옛날 이야기를 말씀해주시는 장면 아니겠는가.   

그래서 그런지 세상에 넘쳐나는 게 이야기이다. 인터넷 상의 각종 게시판에는 재미있는 이야기들이 넘쳐나고, 이제 열풍이라고 하기엔 일상적인 것이 되어버린 트위터, 페이스북 등 최신 SNS도 결국 이야기가 오고가는 장으로 자리잡아가는 모양새다. (정보의 바다라는 별명처럼, 인터넷의 주요 기능 중 하나는 여전히 정보전달이긴 하지만.)  

아마 사정은 아주 먼 옛날 사람들이 살던 시절에도 다르지 않았을 것이다. 그렇게 옛 사람들의 이야기가 전해지고 전해지다 보면 소문이 되고, 민담이 되고, 설화가 되고, 전설이 되고, 신화가 되는 것이 아닐까? 

그런데 이상한 점이 하나 있다. 옛날에도 전 세계 곳곳에 사람들이 살고 있었을테고, 그 사람들의 이야기도 정말 많았을텐데, 우리 주변에는 왜 이다지도 서양 신화들만 살아있는 것처럼 보일까? 서양 신화라기보다는 그리스 로마 신화라고 말하는 것이 더 정확하겠다. 이런 현상에 관해 다양한 분석이 가능하겠지만, 이 독후감에서 다룰 내용은 아니니 넘어가자.  

이 책. 『이야기 동양신화 중국편』은 바로 이러한 우리 상황에서 출판된 보물같은 책이다. 맨 뒤 '이야기를 마치며'에서 밝히듯이, 글쓴이는 서양의 신화와 마법담만 넘쳐나고 동양의 상상력은 적막하기 그지없는 우리 현실에서 상상력의 균형을 이루고자 이 책을 썼다.  

그런 마음을 먹고 쓴 책이라그런지, 동양신화의 다양한 모습들이 다양한 삽화와 함께 흥미진진하게 소개되어있다. 혼돈의 시기를 거쳐 거인 반고가 쓰러져 이 세상이 이루어지는 시절의 이야기부터 시작해, 인간과 만물을 만들어낸 여와 등 여신들의 이야기와 온 세상의 통치자 황제 등 남신의 이야기를 거쳐 세상만사 온갖 사물들을 관장하는 신들의 이야기, 그리고 인간의 역사가 시작되는 시기까지를 소개해준다. 거기에 더해, 옛 사람들의 상상력의 무한함을 느낄 수 있는 이방인들에 대한 기록, 신기하고 별난 사물들, 하늘 위 낙원과 땅 밑 지하세계까지 이 책에서 모두 만날 수 있다.

처음부터 끝까지 한 글자, 한 단락도 빠지지 않고 이야기를 따라가다보니, 동양의 옛 사람들이 생각했던 세계를 한 바퀴 쭉 관람하고 온 느낌이 들었다. 때때로는 기존에 알고 있었던 그리스 로마 신화의 내용들과 놀랍도록 흡사한 내용들에 놀라움을 느끼기도 했고, 그쪽 신화가 보여주지 못하는 자연친화적이며 순수한 마음씨를 만날 때마다 즐거움을 느끼기도 했다. 

그런데 책을 다 읽고다니, 또 역시 우리 현실을 돌아보게 된다. 무슨 책을 읽든 이렇게 무거운 주제로 연결시키니 이것도 병이다. (본문에 나오는 굴굴이라는 동물이라도 기를 수 있다면 좋겠다. 너구리같이 생기고 흰 꼬리에 말갈기가 있다는데, 기르면 어느 순간에 근심이 없어진다고 하니까^^.........)  

사실 작년에 사기를 읽을 때 든 생각인데, 은 주왕과 주 무왕의 왕권교체기를 다룬 부분을 읽을 때, 만화 봉신연의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다. 중학생일 때 그 만화를 봤으니 적어도 8년이 지났는데, 아직까지도 은주역성혁명 시기를 접할 때면 그 만화를 떠올린다. 만화 속 캐릭터들의 모습이 이런 신화 책 속 이야기를 읽을 때마다 떠오르는데, 이럴 때마다 일본 문화산업의 강력함을 온몸으로 체감한다. 심지어 작년에는 「중국 고전을 원작으로 각색한 아니메(Anime)의 개작 메카니즘 연구」라는 석사논문까지 나왔다.(바로가기

우리나라에서도 문화 산업의 육성과 경쟁력을 중요한 과제로 생각하는 분위기가 어느 정도 조성되어가는 느낌이다. 그런데 사실 과거 몇몇 드라마의 수출과 현재 아이돌 가수들의 해외진출을 빼면 이렇다할 '내용과 이야기'를 갖춘 문화는 없어보인다. 이런 상황을 타개할 좋은 출발점으로 바로 이 책을 선택하는 것은 어떨까? 동양의 전설과 이야기는 우리가 얼핏 생각하는 것처럼 구닥다리도 아니며, 서양 신화보다 격이 떨어지지도 않는다. 오히려 훨씬 광대한 영역을 아우르는 거대한 몸짐의 이야기 보따리라는 사실을 이 책을 통해 알게 되었다.  

한국적인 것이 꼭 세계적인 것은 아니며, 동양적인 것도 물론 꼭 세계적인 것은 아니다. 그렇지만 문화와 이야기가 여러 방면에서 중시되고 있는 요즘 세상에서, 잘 안다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우리와 동떨어져 있는 서양 이야기에서만 해법을 찾을 필요는 없지 않을까?  잘 모른다고 생각하지만 사실 바로 우리 곁에 살아숨쉬고 있는 동양 신화에서 다양한 이야기들을 만나보자. 출발점은 물론 이 책으로 삼으면 좋을 것이다.

* 작은 오류 지적 하나만 덧붙이겠다. 427쪽에서 틱장애가 '눈을 자주 깜빡거리는 증세'라고 설명되어있는데, 잘못된 섦여이다. 틱장애는 눈 깜빡임 뿐만 아니라 다양한 신체부위에서 나타나며, 특정한 말이나 소리를 반복적으로 내뱉는 음성 틱장애도 있다.(더 자세한 설명은 네이버에서)

읽은 기간 : 2011 01 03 ~ 2011 01 08

정리 날짜 : 2011 01 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