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의 무늬』 - 진리의 열정에서 해방되기

독서기록2013. 11. 24. 17: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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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의 무늬
고종석 지음 / 개마고원 / 200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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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종석이라는 이름을 처음 접한 시기는 5년 전이다. 스물한 살이던 그 시절, 과 선배 자취방에서 고종석의 책 '감염된 언어'를 발견했다. 꽤나 흥미로운 제목이라 읽기 시작했던 그 책을 접하며 나는 고종석의 팬이 됐다.


'자유의 무늬'는 고종석이 90년대 말에서 2000년대 초반까지 신문 및 각종 지면에 발표한 글을 묶은 책이다. 책을 관통하는 일관된 주제가 없다고는 하지만, 고종석의 사상이 책 곳곳에 뿌리박혀 있다. 그리고 고종석의 사상은 꽤나 일관적이다.

자유주의와 개인주의의 화신인 그에게 모든 종류의 집단주의, 특히 민족주의는 혐오 대상이다. '자유의 무늬'에 수록된 여러 글에는 이러한 그의 사상이 끊임없이 등장한다. 나 역시 그 사상을 따르는 독자이기에, 기꺼운 마음으로 그의 글들을 읽었다.

가장 마음에 들어온 글은 '진리의 열정에서 해방되기'였다. 마지막 문단을 인용해본다.

그것이 옳지 않은 일이라고, 즉 문화로서의 전체주의를 제어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해야 할 일은, 우선 진리의 전유권을 포기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남들이 진리를 전유하는 것도 용납하지 않는 것이다. 다시 말해 진리에 대한 사랑을 줄이는 것, 열정의 사슬을 자유로써 끊어내고, 광신의 진국에 의심의 물을 마구 타는 것이다. 자유나 평등이나 민주주의나 인권이나 환경처럼 보편적이라고 알려진 가치들에 대해서까지도 이성의 계산기를 다시 들이대며 그것들을 섬세하고 구체적인 윤리의 체로 밭아보는 것이다. 민족이나 통일이나 애국이나 스크린 쿼터 같은, 더 유동적이고 제한적인 가치들에 대해서는 말할 것도 없고.   
'자유의 무늬' 143쪽

날이 갈수록 내 안의 회의주의, 혹은 의심은 강해져만 간다. 그 대상은 전체주의, 사회주의, 공산주의 등 누구에게나 부정적인 것들부터 시작해, 애국심이나 민족의식, 동기동창 문화 등 일견 보기에 긍정적인 가치에까지 미치고 있다.

문득 고종석의 책을 읽던 와중, 내가 그의 주장과 사상에는 회의의 칼날을 들이민 적이 없다는 자각을 했다. 5년 전 그의 저서를 만난 이래, 그의 주장과 글은 항상 나에게 모범으로 다가왔으며 내가 따라야 할 진리였다. 

이제 '고종석이라는 진리'의 열정에서 해방될 준비를 해야겠다. 그도 결국은 불완전한 인간이며, 트위터에서 볼 수 있는 그의 인격은 사실 그리 존중할 만한 수준이 못 되는 것 같다. 다만, 뛰어난 언어학자이자 글쟁이 고종석의 모습은 꽤 오랜 시간 내가 따라야 할 모습으로 남아있을 것이 분명하다.

마지막으로 덧붙일 내용이 하나 더 있다. 이 책을 읽으며, 나 자신에 대한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다.

이십대 중반에서 후반으로 꺾여들어가는 내가, 벌써부터 집중력과 독해력 그리고 텍스트를 꿰뚫는 안목이 예전에 비해 상당히 약해졌다. 

산발적 텍스트와 하이퍼링크를 보는 시간을 조금 줄이고 일관적이고 선형적인 텍스트에 조금 더 많은 시간을 투자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