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공적인 워킹홀리데이?

2011/워킹 홀리데이 자유2011. 8. 14. 21:39

호주 워킹홀리데이를 준비하는 분들이라면 누구든지 '성공적인' 워홀 생활을 꿈꾸고 계실 것입니다. 저도 현실적으로 생각하려고 마음을 가라앉히려 많이 노력했었지만, 이곳에 도착하기 전까지 약간이나마 부푼 꿈을 안고 있었습니다. 외국인 친구와 친해지고, 실생활에서 영어를 쓰게되면서 자연스럽게 영어실력을 늘리고, 남부럽지 않은 직업을 구해 돈도 벌고 경험도 쌓고, 마지막으로는 그렇게 모은 돈으로 화려한 여행을 하고....

3월 15일 아침에 멜번의 아침을 처음으로 맞이했고 오늘이 8월 14일이니 이제 오늘만 지나가면 정말로 멜번에서 지낸지 5개월이 지나게 됩니다. 지금까지 제가 지내온 모습들을 앞서 말한 '성공적인' 워홀 생활에 짜맞춰보자니 별로 맞아떨어지는 짝이 없습니다. 솔직하게 말해서 정말 친구라고 부를만한 외국인은 하나도 없습니다. 실생활에서 영어를 쓰기 위해 외국인들과 함께 사는 집에 들어가려고 했었으나 결국 초반에 영어로 통화하는데 어려움을 느껴 한국인 집에 들어와 지금까지 살고 있습니다. 덕분에 자연스럽게 영어실력을 늘리진 못했구요. 남부럽지 않은 직업을 구하고 싶었기에 처음에 주제도 모르고 날뛰었지만, 말도 안되는 다단계 업체부터 시작해 한국 식당, 저녁 체육관 청소, 제가 일을 얼마나 못하는지 일깨워준 난도스, 건물 화장실 청소를 거쳤습니다.
다행히 이제는 원래 아침에 청소만 하던 레스토랑에서 웨이터와, (가끔씩 바쁠때만!) 바리스타 일을 시작했습니다. 다행히 돈은 그럭저럭 벌어서 어느새 호주 도착 후 적자였던 통장잔고가 흑자로 돌아섰습니다. 여행은 이제 계획을 짜고 있구요..

성공적인 워킹홀리데이 생활이라고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외국인 친구'와 '자연스러운 영어 늘리기'는 완벽히 실패했습니다.[각주:1]

이 글은 실패자의 입장으로 워킹홀리데이를 준비하는 분들에게 당부드리고 싶은 말을 전하는 글입니다. 지금 여러분들은 인터넷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며 워홀 '수기'를 찾아 읽고 계실겁니다. 만일 꾸준히 연재되는 수기가 있다면, 대체로 나름대로 '성공적인' 삶을 살아가는 워홀러들의 수기일 것입니다.

성공적인 몇몇 워킹 홀리데이 메이커 뒤에, 자기 자신의 이야기를 말하기 꺼려하는 수천 수만명의 워홀러들을 생각하시기 바랍니다. 시작하기도 전에 기를 죽여서야 안되겠지만, 출발 전 유학원 설명회에서 들은 바로는 한 해 호주로 입국하는 한국인 워홀러가 '4만 명'이라고 합니다. 과장해서 그들중 절반이 세컨비자를 받는다고 친다면, 한 해에 호주 전역에 대략 6만여 명이 워킹홀리데이 생활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6만 명 가운데 성공적인 몇몇의 이야기를 듣고 여러분들이 그렇게 될 수 있다고 막연이 기대하지 마시길 부탁드립니다.

호주는 영어권 국가이기에 영어는 절대적으로 '기본기'입니다. 여기 와서 영어를 배우겠다는 생각은 절대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호주는 영어를 '말하기 위해, 쓰기 위해' 오는 곳이지 영어를 '배우러' 오는 곳이 아닙니다.

한국에서 여러분들이 해봤던 그 어떤 일보다 힘든 일을 하며 살아가게 될 가능성이 큽니다. 다문화주의를 자신들의 자랑으로 여기고 다민족 사회를 강점으로 내세우는 멜번[각주:2]이지만, 제가 보는 멜번의 모습은 아직까지도 인종에 따른 직업분화와 생활양식의 차이가 존재합니다.
편의점 어디를 둘러봐도 백인은 일하지 않습니다. 중국인과 인도인이 일하고 있습니다. 도시의 표면적인 위생과 미화를 담당하는 '큰' 청소일은 백인이 합니다. 직원들이 퇴근한 뒤 썰렁한 건물에 남아 하는 사무실, 화장실 청소는 유럽계, 남미계 이민자들과 동양인들이 합니다. 동양인들도 자주 찾는 식당과 카페에는 동양인도 일합니다. 백인들만 자주 찾는 식당과 카페에는 대체로 백인들만 일합니다. 어둠이 내리깔린 도시의 표면은 더욱더 갈라집니다. 은은한 조명 아래에서 그들의 'Dinner'를 즐기는 자들은 백인들입니다. 자국민이 운영하는 작은 식당, 혹은 패스트푸드, 누구나 갈 수 있는 스타벅스에는 인도인과 동양인들이 넘쳐납니다. [각주:3]

이 곳에 오면 저절로 일자리가 생기는 일은 절대 없습니다. 혹시 일자리를 얻게 된다면, 처음엔 좋지 않은 근무조건일 가능성이 매우 높습니다. 처음부터 모든게 잘 풀리는 사람이 없지는 않을것입니다. 그러나 이곳은 분명히 다른 문화를 가진 다른 나라이며, 이곳의 규칙과 분위기를 모르는 초보 구직자에게 좋은 기회가 돌아갈 가능성은 매우 적습니다. 힘들게 생활하실 것을 무조건 각오하시고 오셔야 합니다.

마치 중.고등학생 시절 '누가 이렇게 저렇게 해서 성적을 올렸다'라는 말만 듣고 그대로 따라했다가 다음 시험에서 별 재미를 못 보는 것과 비슷한 것이라 생각합니다. 
영어 하나만큼은 많이 준비해서 오시길 바랍니다.[각주:4] 힘들게 생활하게 될 것이라 단단히 각오하고 오시길 바랍니다. 

부푼 꿈을 한 수 접고, 자신의 현재 모습을 냉정히 바라보고, 떠도는 풍문 뒤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의 눈물과 좌절이 숨어있을지 상상하시기 바랍니다. 

그렇게 준비된 분들이라면 저는 실패해버린 위의 목표들을 달성하고 멋지게 워킹 생활을 즐기다 돌아가실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1. 영어실력 '늘리기'에 실패했다는 말입니다. 저는 한국에서 영어를 매우 많이 준비했습니다. [본문으로]
  2. 위에서는 일반적인 '호주'에 대한 이야기를 했지만, 이제부터는 제가 경험한 '멜번'만을 얘기합니다. 다른 도시는 가보질 않아서 모르겠습니다. [본문으로]
  3. 멜번이 신분제 사회는 아니기에 누구든지 자기가 가고 싶은 곳에 갈 자유는 있고, 제가 방금 말한것과는 반대로 얼마든지 자유롭게 '그들'의 문화에 동참하는 워홀러들이 있습니다. 바로 그런 분들이 거리낌 없이 자신들의 생활과 즐거움을 지인들에게 말하고 인터넷에 글로 표현할 것입니다. [본문으로]
  4. 본문과는 조금 다른 어조 말해보겠습니다. 솔까말 우리가 여기 영어학원에 돈 가져다 바치려고 온건 아니잖습니까? 이왕 온거 이딴 나라에 돈 퍼주기보단 왠만하면 좀 빼먹고 가자구요. [본문으로]

호주 워킹홀리데이 0-3. 떠나기 전의 일상들, 전날밤의 짐싸기

2011/워킹 홀리데이 일기2011. 3. 26. 14:33


3월 14일 멜번행 비행기를 예약한 후, 참 정신없이 시간을 보냈다. 시간을 쪼개고 쪼개서 사람들을 많이 만나려고 했었는데.. 그게 또 마음처럼 되지가 않았다. 준비를 미리미리 다 해놨었다면 떠나기 전 2주간 많은 사람들을 만났을텐데, 준비 자체가 어설프다보니 짧은 시간 안에 (떠날 준비 + 사람들 만나기)를 한번에 하기가 너무 힘들었다. 3월 3일엔 대학교에서 친한 선배 자취방 이사를 도와주고, 오후에 같은 과 동기들, 그리고 다른 선배와 술을 마셨다. 7일 밤엔 원래 고등학교때 친구들과 밤새 놀자고 했었지만... 하필 감기에 걸리는 바람에 그냥 저녁에 만나서 밥먹고 위닝하고 헤어졌다. 그렇게 일주일이 후딱 지나가버리고 나니 정말 눈코뜰새 없이 바빴고, 12일 저녁 가장 친한 고등학교 친구들과 마지막으로 같이 술을 마신 후 13일 하루는 계속 출발 준비를 했다. 미리미리 차분하게 했다면 전날밤 잠을 푹 잤겠지만...


결국 네시가 넘어서야 이렇게 가방 싸는걸 마쳤다.

20kg 맞추느라 계속 짐을 넣었다 뺐다 반복한 캐리어

캐리어 무게를 줄이기 위해 주로 책을 집어넣은 백팩, 그리고 바로바로 필요한걸 보관하고 또 호주에서도 계속 쓰려고 챙긴 크로스백. 좀 더 큰걸 샀으면 좋았을텐데 하는 아주 약간의 후회가..

그래서 저 가방에 뭐가 들어있느냐... 아래처럼 엑셀 파일로 정리를 했다. 맨처음엔 다 빨간색이었고, 하나하나 챙길때마다 검은색으로 바꾸었다. 꼼꼼히 챙긴다고 챙겼는데 결국 몇가지는 빼먹었다..





그리고 두 번째 탭에는 해야할 일들을 적었다. 이것도 역시 하려고 했는데 다 하지 못했다.. 혹시 이 글을 보고계신 분이 워홀을 준비중이시라면.. 아니 워홀뿐만 아니라 여행 준비하는 분이시라면.. 부디 차근차근 준비를 하고 가시길 바랍니다 ㅜㅜ

아참 도착해서 이후 일들은 18+카드와 rsa빼고는 모두 처리했다. 저 두개는 지금 당장 할 필요가 없는것같아서.. 18+카드는 있으면 편하긴 할텐데, 사실 지금까지 술집도 따로 안가봤고, 또 여권이나 국제학생증으로 신분증을 대신하는게 별로 불편하지도 않다. 그런데 돈 따로 내면서까지 18+카드 받기에 아직은 돈에 여유가 없다.. rsa는 바텐더 할 생각이 없기에 패쓰!


저 준비물을 다시 보다보니 갑자기 또... 슬프다ㅋㅋㅋㅋㅋ 바로 말라리아 예방약때문!!
호주 워킹홀리데이 후에 동남아/인도/터키 지역을 여행할 예정이기 때문에 말라리아 예방약을 챙겨가려고 했다. 물론 이것도 출국날 삼일전인가.. 아주 다급하게..쯧쯧. 강북삼성병원에 찾아가서 처방전을 받았는데, 해당 지역에 대충 2개월 반에서 3개월정도 머물 생각이라고 했다. 의사선생님이 처음엔 일주일에 한번 먹는 약으로 처방해주겠다고 했다가, 터키 지역 말라리아가 그 약에는 내성이 있기 때문에 매일 먹는 약으로 바꿔서 처방했다고 하셨다. 그렇게 되면 양이 일곱배로 늘어나는게 아닌가? 가격이 비싸지지 않을까 하는 걱정에, 그렇게 되면 더 비싸지 않냐고 물어봤더니.... 어차피 그게 그거라고 하시더라.. 둘다 비싸다고.. 처방전을 받아서 약국으로 갔다. 90일치라는 처방전을 보더니 약국 수납원들이 깜짝 놀라더라. 

여러분들 잠시 생각해보세요. 정말 비싼 약입니다. 그리고 90일치예요. 그럼 얼마일까요?


아 정말............ 안그래도 워홀 준비하느라 돈쓴게 장난이 아니었는데, 예상치도 못한 곳에서 뒤통수를 맞았다. 의사나 약사분, 아니면 비싼 치료를 받고 계신분들이 본다면 웃을 일일지도 모른다. 그런데 난 정말.. 세달치 약이 아무리 비싸봤자 10만원이나 하겠냐 싶은 마음이었는데 아놔...... ㅜㅜ

아 의사양반.. 의사선생님 아니다 의사양반이다. 의사양반!!!! 26만원이 뭡니까. 미리 말좀 해주지...

아무튼 전날까지 계속된 짐싸기는 저렇게 끝났다. 지금 와서 보건데 옷을 좀 더 많이 가져왔어야했다. 그것도 따뜻한 옷으로. 지금 멜번 바람이 장난이 아니다ㄷㄷㄷ