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종석 글쓰기 과제_'가을'주제 1600자 자유 글쓰기_첨삭 반영

자유게시판2013. 10. 15. 13:10

* (2013년 10월31일 작성) 4군데를 수정 첨삭받았습니다. 

수정 부분은 밑줄을 그었으며, 수정 전 원본은 이 글 하단으로 내렸습니다. 


고종석 선생님의 책을 읽으며 그 세계관을 공유했기 때문인지... 마지막에 '아주 좋습니다'는 평을 들었습니다. 뿌듯합니다.


* (2013년 10월15일 작성)현재 수강중인 고종석 선생님의 글쓰기 수업 첫 번째 공통과제입니다.

3주 혹은 4주 후에 첨삭받아 돌려받을 예정이며, 첨삭 결과도 공개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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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첨삭 후

대한민국 애국가 3절 가사는 가을하늘 공활한데 높고 구름 없이로 시작한다애국가 덕분에 나는 스물세 살이 될 때까지 한반도 가을 하늘이 정말 높은’ 하늘인 줄 알았다더하여 삼천리 화려강산이 아름다운 이 나라에서 길이 보전하는 게 당연하다 생각했다.

스물세 살이 되던 해 삼월나는 인천을 떠나 호주 멜버른에 도착했다남반구 국가 호주는 3월에 가을을 맞이한다멜버른에 처음 도착한 날 도심 풍경과 진정으로 높은’ 가을 하늘은 지금도 눈에 선명하다풍성한 구름도 맘에 쏙 들었다멜버른에선 작은 직사각형 도심만 벗어나면 고층 빌딩이 거의 없기 때문에 어디서나 지평선이 보인다넓은 하늘과 그 위를 멋지게 부유하는 구름은 어느새 내가 가장 좋아하는 풍경이 됐다.

멜버른 워킹홀리데이 생활을 끝내고 서울에 돌아왔을 때 가장 실망스러웠던 것은 서울의 가을 하늘이었다남반구에서 정말 아름다운 하늘로 눈 호강을 했던지라고층빌딩에 가로막힌 서울 하늘은 도통 맘에 들지 않았다도심을 벗어나면 이번엔 아파트가 하늘을 가린다지평선은 꿈도 못 꾼다하늘을 막아선 고층건물과 아파트를 볼 때마다지평선과 넓은 하늘을 보며 살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그러나 내가 살아갈 곳은 한국일 것이다정말 큰 이변이 없다면 말이다어쩐지 갇힌 기분이기는 하지만 적응할 수밖에 없다.

탈출 기회를 한 번 잡기는 했다올 상반기 교환학생 신분으로 덴마크 오덴세에 다녀왔다다섯 달 지내는 동안높은 하늘을 원 없이 바라봤다비록 앞의 석 달간 회색 하늘빛 아래 유사 우울증에 시달리긴 했지만뒤의 두 달 내내 나는 눈부시게 높은 하늘과 푸근한 구름을 감상했다지평선을 볼 수 있는 평지와 높은 하늘은적어도 나에게한반도 화려강산보다 아름다웠다.

짧은 탈출은 끝났고스물여섯 먹은 나는 8월부터 작은 언론사 인턴기자로 일하고 있다사무실이 17이어서 창문 정면을 바라보면 나름 넓은 하늘이 보인다하지만 시선을 살짝 돌리면 맞은편 건물이 하늘을 가로막는다. 10월 중순 가을로 접어들자 해질 무렵 하늘빛은 세상 그 어떤 보석 빛깔보다 아름답다그러나 그 아름다움을 만끽하기에 서울 건물은 너무 높다내 심미안을 만족시키지 못하는 곳에 살아야 하는 신세가 애석하기는 하나그렇다고 해서 연고도 직장도 없는 국외로 떠나기란 더 어렵다내 또래 대다수가 그렇듯 나도 현실이라는 환경에 순응하고 있다.

나는 곧 인턴 근무와 대학 마지막 학기를 끝낸 후 진짜 사회인이 될 것이다내 앞날이 어떻게 풀릴지 감조차 잡을 수 없지만부디 너무 씁쓸하게 전개되지만 않았으면 좋겠다소중한 가족절친한 친구사랑하는 애인(10년 후라면 '아내')에 더해 일용할 양식만 주어진다면 나는 그럭저럭 한국 아름다움에 만족하며 살 수 있을 것이다.

생각해보면 멜버른에서 일하며 살 때도오덴세에서 공부하며 살 때도 한국을 그리워하는 순간은 꼭 찾아오곤 했다어쩌면 내가 어린 마음씨를 아직도 버리지 못해 내 곁을 둘러싼 조건에 만족하지 못하는 것일지도 모르겠다작은 다짐을 해본다매년 가을이면 울긋불긋 단풍으로 내 마음을 달래보겠노라고매년 가을이면빌딩 숲에 둘러싸여있을지언정서울 하늘을 즐거이 만끽하겠노라고그리고 더는 외국 살이를 그리워하지 않겠노라고다만 매년 가을 진정으로 높디높은 그 동네 하늘을 그리워하는 건 내 힘으로는 어쩔 도리가 없을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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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첨삭 전

대한민국 애국가 3절 가사는 가을하늘 공활한데 높고 구름 없이로 시작한다. 애국가 덕분에 나는 스물세 살이 될 때까지 한반도 가을 하늘이 정말 높은하늘인 줄 알았다. 더하여 삼천리 화려강산이 아름다운 이 나라에서 길이 보전하는 게 당연하다 생각했다.

스물세 살이 되던 해 삼월, 나는 인천을 떠나 호주 멜버른에 도착했다. 남반구 국가 호주는 3월에 가을을 맞이한다. 멜버른에 처음 도착한 날 도심 풍경과 진정으로 높은가을 하늘은 지금도 눈에 선명하다. 풍성한 구름도 맘에 쏙 들었다. 멜버른에선 작은 직사각형 도심만 벗어나면 고층 빌딩이 거의 없기 때문에 어디서나 지평선이 보인다. 넓은 하늘과 그 위를 멋지게 부유하는 구름은 어느새 내가 가장 좋아하는 풍경이 됐다.

멜버른 워킹홀리데이 생활을 끝내고 서울에 돌아왔을 때 가장 실망스러웠던 것은 서울의 가을 하늘이었다. 남반구에서 정말 아름다운 하늘로 눈 호강을 했던지라, 고층빌딩에 가로막힌 서울 하늘은 도통 맘에 들지 않았다. 도심을 벗어나면 이번엔 아파트가 하늘을 가린다. 지평선은 꿈도 못 꾼다. 하늘을 막아선 고층건물과 아파트를 볼 때마다, 지평선과 넓은 하늘을 보며 살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그러나 내가 살아갈 곳은 한국일 것이다. 정말 큰 이변이 없다면 말이다. 어쩐지 갇힌 기분이기는 하지만 적응할 수밖에 없다.

탈출 기회를 한 번 잡기는 했다. 올 상반기 교환학생 신분으로 덴마크 오덴세에 다녀왔다. 다섯 달 지내는 동안, 높은 하늘을 원 없이 바라봤다. 비록 앞의 석 달간 회색 하늘빛 아래 유사 우울증에 시달리긴 했지만, 뒤의 두 달 내내 나는 눈부시게 높은 하늘과 푸근한 구름을 감상했다. 지평선을 볼 수 있는 평지와 높은 하늘은, 적어도 나에게, 한반도 화려강산보다 아름다웠다.

짧은 탈출은 끝났고, 스물여섯 먹은 나는 8월부터 작은 언론사 인턴기자로 일하고 있다. 사무실이 17층인지라 창문 정면을 바라보면 나름 넓은 하늘이 보인다. 하지만 시선을 살짝 돌리면 맞은편 건물이 하늘을 가로막는다. 10월 중순 가을로 접어들자 해질 무렵 하늘빛은 세상 그 어떤 보석 빛깔보다 아름답다. 그러나 그 아름다움을 만끽하기에 서울 건물은 너무 높다. 내 심미안을 만족시키지 못하는 곳에 살아야 하는 신세가 애석하기는 하나, 그렇다고 해서 연고도 직장도 없는 국외로 떠나기란 더 어렵다. 내 또래 대다수가 그렇듯 나도 현실이라는 이름에 순응하고 있다.

나는 곧 인턴 근무와 대학 마지막 학기를 끝낸 후 진짜 사회인이 될 것이다. 내 앞날이 어떻게 풀릴지 감조차 잡을 수 없지만, 부디 너무 씁쓸하게 전개되지만 않았으면 좋겠다. 소중한 가족, 절친한 친구, 사랑하는 애인(10년 후라면 '아내')에 더해 일용할 양식만 주어진다면 나는 그럭저럭 한국 아름다움에 만족하며 살 수 있을 것이다.

생각해보면 멜버른에서 일하며 살 때도, 오덴세에서 공부하며 살 때도 한국을 그리워하는 순간은 꼭 찾아오곤 했다. 어쩌면 내가 어린 마음씨를 아직도 버리지 못해 내 곁을 둘러싼 조건에 만족하지 못하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작은 다짐을 해본다. 매년 가을이면 울긋불긋 단풍으로 내 마음을 달래보겠노라고. 매년 가을이면, 빌딩 숲에 둘러싸여있을지언정, 서울 하늘을 즐거이 만끽하겠노라고. 그리고 더는 외국 살이를 그리워하지 않겠노라고. 다만 매년 가을 진정으로 높디높은 그 동네 하늘을 그리워하는 건 내 힘으로는 어쩔 도리가 없을듯하다.


2013년 10월 1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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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홀 검색으로 들어오시는 분들께

2011/(2011)호주 워홀2012. 8. 6. 01:38

저는 2011년 3월 15일 멜번 툴라마린 공항에 도착할 당시 가진 돈 1200불과 한국 통장에 500만원이 있었습니다.

우여곡절 끝에 9월 18일까지 워커로서의 삶을 살다가 그다음부터는 멜번 2주, 시드니 1주, 시드니 근교 배럴(Bowral) 1주, 그리고 유럽 두달 여행을 하고 한국으로 돌아왔습니다.


호주 땅에서 벌어들인 돈은 차후 세금환급 받은 것과 초기 캐시잡으로 벌은 돈까지 모두 합쳐 12000달러 가량 됩니다. 한달에 2000달러정도 번 셈이네요.


농장,공장 관련해서는 아무 것도 모릅니다.. 저는 6개월간 한 집에서 살며 멜번 시티라이프만 '아주 조금' 알고 있습니다.

궁금한 사항이 있으시다면 댓글이나 이메일 보내주시기 바립니다.

헬싱키의 Cafe Esplanad에서 쓴 글 [11월 5일]

2011/글2011. 11. 6. 23:31

핀란드.. 생각보다 별 거 없다. 역시 사람 사는곳인가?

어떤 거대한 무언가를 보고 싶어 이곳에 왔지만, 사람들이 다 그런 생각을 하며 사는 것 같지 않다. 나에게는 당연한 것들이 너에게는 신기하듯, 너에게 당연한 것들이 나에게는 신기하다. 그런데 당연한 것들은 인지하기가 어려운지라, 설명하기는 더더욱 어렵다. 나는 그 어려운 것들을 찾아 나선게 아닐까? 그러면서도 실상 노력은 하지 않고, 또 관광을 제대로 즐기지도 못하고 있다. 그래도 '다름'을 끊임없이 만나기에 기분이 나쁘지만은 않다. 멜번에서 에딘버러까지 아주 당연했던 무단횡단, 코펜하겐에 도착하자 단 한 번도 보지 못했다. 나라마다 같은 상품의 가격이 달랐다. 당연한 사실이겠지만, 나에게는 처음 겪는 것들이었다. 멜번에서 그렇게 자주 지나쳤던 카페들을 점점 만나기가 힘들어지고 있다. 기회만 되면 커피를 마시는걸 보니 나는 정말 카페인 중독인가보다.
내가 나의 생각 속에서만 머무른다면 저 바깥에 얼마나 대단한 사람들이 많이 있는지 알지 못할텐데, 여행은 그걸 알게 해준다. 스트랫포드 어폰 에이번을 가던 기차에서 만난 출판사에서 일하는 형님, 코펜하겐을 같이 돌아다닌 10개월째 세계 배낭여행중이라던 멕시코 아저씨, 지금 같이 지내고있는 5개국어를 말하고 이해할줄 아는 카우치서퍼까지.. 아참 호바트 백패커에서 만났던 일본인들까지! 아주 거대한 무언가를 발견하지는 못했고, 또 준비가 부족했던지라 관광도 어설프게 하고 있지만, 계속해서 나와 다르고 대단한 사람들을 만난다. 그렇기에

나오길 잘 했다. 

멜번 날씨특집 2탄.

2011/워킹 홀리데이 정보2011. 8. 29. 22:57
같은시간 같은장소에서 바라본 서쪽 동쪽 남쪽입니다.

서쪽-빅토리아 하버 방향


동쪽-시티 중심 방향



아침에 아무리 하늘이 맑아도..
점심쯤되면 바닷가에서 먹구름이 밀려옵니다 ㅜㅜ

물론 오늘은 좀 극적으로 대비되는 날이구요ㅋㅋ



그래도 하루중에 날씨가 확! 변하긴 변하는 멜번입니다..



 

성공적인 워킹홀리데이?

2011/워킹 홀리데이 자유2011. 8. 14. 21:39

호주 워킹홀리데이를 준비하는 분들이라면 누구든지 '성공적인' 워홀 생활을 꿈꾸고 계실 것입니다. 저도 현실적으로 생각하려고 마음을 가라앉히려 많이 노력했었지만, 이곳에 도착하기 전까지 약간이나마 부푼 꿈을 안고 있었습니다. 외국인 친구와 친해지고, 실생활에서 영어를 쓰게되면서 자연스럽게 영어실력을 늘리고, 남부럽지 않은 직업을 구해 돈도 벌고 경험도 쌓고, 마지막으로는 그렇게 모은 돈으로 화려한 여행을 하고....

3월 15일 아침에 멜번의 아침을 처음으로 맞이했고 오늘이 8월 14일이니 이제 오늘만 지나가면 정말로 멜번에서 지낸지 5개월이 지나게 됩니다. 지금까지 제가 지내온 모습들을 앞서 말한 '성공적인' 워홀 생활에 짜맞춰보자니 별로 맞아떨어지는 짝이 없습니다. 솔직하게 말해서 정말 친구라고 부를만한 외국인은 하나도 없습니다. 실생활에서 영어를 쓰기 위해 외국인들과 함께 사는 집에 들어가려고 했었으나 결국 초반에 영어로 통화하는데 어려움을 느껴 한국인 집에 들어와 지금까지 살고 있습니다. 덕분에 자연스럽게 영어실력을 늘리진 못했구요. 남부럽지 않은 직업을 구하고 싶었기에 처음에 주제도 모르고 날뛰었지만, 말도 안되는 다단계 업체부터 시작해 한국 식당, 저녁 체육관 청소, 제가 일을 얼마나 못하는지 일깨워준 난도스, 건물 화장실 청소를 거쳤습니다.
다행히 이제는 원래 아침에 청소만 하던 레스토랑에서 웨이터와, (가끔씩 바쁠때만!) 바리스타 일을 시작했습니다. 다행히 돈은 그럭저럭 벌어서 어느새 호주 도착 후 적자였던 통장잔고가 흑자로 돌아섰습니다. 여행은 이제 계획을 짜고 있구요..

성공적인 워킹홀리데이 생활이라고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외국인 친구'와 '자연스러운 영어 늘리기'는 완벽히 실패했습니다.[각주:1]

이 글은 실패자의 입장으로 워킹홀리데이를 준비하는 분들에게 당부드리고 싶은 말을 전하는 글입니다. 지금 여러분들은 인터넷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며 워홀 '수기'를 찾아 읽고 계실겁니다. 만일 꾸준히 연재되는 수기가 있다면, 대체로 나름대로 '성공적인' 삶을 살아가는 워홀러들의 수기일 것입니다.

성공적인 몇몇 워킹 홀리데이 메이커 뒤에, 자기 자신의 이야기를 말하기 꺼려하는 수천 수만명의 워홀러들을 생각하시기 바랍니다. 시작하기도 전에 기를 죽여서야 안되겠지만, 출발 전 유학원 설명회에서 들은 바로는 한 해 호주로 입국하는 한국인 워홀러가 '4만 명'이라고 합니다. 과장해서 그들중 절반이 세컨비자를 받는다고 친다면, 한 해에 호주 전역에 대략 6만여 명이 워킹홀리데이 생활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6만 명 가운데 성공적인 몇몇의 이야기를 듣고 여러분들이 그렇게 될 수 있다고 막연이 기대하지 마시길 부탁드립니다.

호주는 영어권 국가이기에 영어는 절대적으로 '기본기'입니다. 여기 와서 영어를 배우겠다는 생각은 절대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호주는 영어를 '말하기 위해, 쓰기 위해' 오는 곳이지 영어를 '배우러' 오는 곳이 아닙니다.

한국에서 여러분들이 해봤던 그 어떤 일보다 힘든 일을 하며 살아가게 될 가능성이 큽니다. 다문화주의를 자신들의 자랑으로 여기고 다민족 사회를 강점으로 내세우는 멜번[각주:2]이지만, 제가 보는 멜번의 모습은 아직까지도 인종에 따른 직업분화와 생활양식의 차이가 존재합니다.
편의점 어디를 둘러봐도 백인은 일하지 않습니다. 중국인과 인도인이 일하고 있습니다. 도시의 표면적인 위생과 미화를 담당하는 '큰' 청소일은 백인이 합니다. 직원들이 퇴근한 뒤 썰렁한 건물에 남아 하는 사무실, 화장실 청소는 유럽계, 남미계 이민자들과 동양인들이 합니다. 동양인들도 자주 찾는 식당과 카페에는 동양인도 일합니다. 백인들만 자주 찾는 식당과 카페에는 대체로 백인들만 일합니다. 어둠이 내리깔린 도시의 표면은 더욱더 갈라집니다. 은은한 조명 아래에서 그들의 'Dinner'를 즐기는 자들은 백인들입니다. 자국민이 운영하는 작은 식당, 혹은 패스트푸드, 누구나 갈 수 있는 스타벅스에는 인도인과 동양인들이 넘쳐납니다. [각주:3]

이 곳에 오면 저절로 일자리가 생기는 일은 절대 없습니다. 혹시 일자리를 얻게 된다면, 처음엔 좋지 않은 근무조건일 가능성이 매우 높습니다. 처음부터 모든게 잘 풀리는 사람이 없지는 않을것입니다. 그러나 이곳은 분명히 다른 문화를 가진 다른 나라이며, 이곳의 규칙과 분위기를 모르는 초보 구직자에게 좋은 기회가 돌아갈 가능성은 매우 적습니다. 힘들게 생활하실 것을 무조건 각오하시고 오셔야 합니다.

마치 중.고등학생 시절 '누가 이렇게 저렇게 해서 성적을 올렸다'라는 말만 듣고 그대로 따라했다가 다음 시험에서 별 재미를 못 보는 것과 비슷한 것이라 생각합니다. 
영어 하나만큼은 많이 준비해서 오시길 바랍니다.[각주:4] 힘들게 생활하게 될 것이라 단단히 각오하고 오시길 바랍니다. 

부푼 꿈을 한 수 접고, 자신의 현재 모습을 냉정히 바라보고, 떠도는 풍문 뒤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의 눈물과 좌절이 숨어있을지 상상하시기 바랍니다. 

그렇게 준비된 분들이라면 저는 실패해버린 위의 목표들을 달성하고 멋지게 워킹 생활을 즐기다 돌아가실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1. 영어실력 '늘리기'에 실패했다는 말입니다. 저는 한국에서 영어를 매우 많이 준비했습니다. [본문으로]
  2. 위에서는 일반적인 '호주'에 대한 이야기를 했지만, 이제부터는 제가 경험한 '멜번'만을 얘기합니다. 다른 도시는 가보질 않아서 모르겠습니다. [본문으로]
  3. 멜번이 신분제 사회는 아니기에 누구든지 자기가 가고 싶은 곳에 갈 자유는 있고, 제가 방금 말한것과는 반대로 얼마든지 자유롭게 '그들'의 문화에 동참하는 워홀러들이 있습니다. 바로 그런 분들이 거리낌 없이 자신들의 생활과 즐거움을 지인들에게 말하고 인터넷에 글로 표현할 것입니다. [본문으로]
  4. 본문과는 조금 다른 어조 말해보겠습니다. 솔까말 우리가 여기 영어학원에 돈 가져다 바치려고 온건 아니잖습니까? 이왕 온거 이딴 나라에 돈 퍼주기보단 왠만하면 좀 빼먹고 가자구요. [본문으로]

호주 워킹홀리데이 B. 멜번 워킹홀리데이 구직일기 2탄

2011/워킹 홀리데이 일기2011. 7. 30. 00:11

4월 21일 난도스에서 트라이얼을 한 후 바로 다음날부터 일하기 시작.
 - 다음날도 다다음날도 그리고 거의 일주일간 설거지만 죽어라 함 : 이스터 홀리데이 기간이었기에 식당이 내내 바빴다. 음식을 빨리빨리 만들어야하는데 나같은 초보가 느릿느릿 일할수는 없었으니까..

그런데 문제는 그 다음이었다. 이자식들.. 차근차근 제대로 알려준적도 없으면서 사사건건 잔소리를 해댔다. 지금 생각해보 참 거지같았던 경우 하나 : 일을 시작한지 4주가 조금 넘었을때, 가게 문을 여는 시간에 일을 하게 됐다. 주인도 같이 나왔었는데, 내가 일하는걸 보더니 대체 왜 4주가 지나도록 아직도 아침에 뭘 해야하는지 모르냐면서 면박을 줬다. 일을 시작한지 4주가 지난건 맞지만 그때까지 아침에 일해본건 3번밖에 없었고, 그나마도 단순히 '이거 해라, 저거 해라'같은 단순지시였다. 단 한번도 아침에 문을 열때는 무슨 일들을 어떤 순서대로 해야하는지 지도받아보지 못했는데, 그걸 못한다고 혼이 났다.

그래도 인정하는건, 솔직히 내가 일을 잘 못하긴 했다. 주문이 밀려들면 당황해서 실수를 계속 저질렀고, 손님들이 불만을 얘기한적도 있었다. 아무튼 결국.. 6월 5일에 잘렸다.
 
6월 6일 난도스에서 잘린지 하루만에 저녁청소일을 구했다. 한국인 컨트랙터가 껴있는 일이긴 했지만, 시급이 16불이었기에 바로 시작했다.

6월 11일, 집앞 레스토랑에서 연락이 왔다. seek.com에서 그 식당이 청소부를 구한다는 광고를 보고 이력서를 냈었는데, 다음주부터 일을 시작하자는 연락이었다. 이건 시급 17.75불.

6월 13일. 아침에 3시간 레스토랑 청소, 저녁에 4시간 건물 화장실 청소를 하는 투잡생활 시작.

6월 중순부터 무릎 통증 시작. 육체적으로 힘든 시기에 어설프게 운동을 시작했다가 결국 무릎에 무리가 오기 시작했다. 게다가 상황을 더 악화시킨건 바로 사이즈가 맞지 않았던 안전화! 

6월 말, 안전화를 신지 않으면서부터 무릎 통증이 조금씩 완화.

6월 중순부터 대략 한 달간, 얼마 있지도 않았던 멜번 친구들 중에 세 명이 한국으로 돌아가버리는 일이 생겼다. 몸의 피로와 함께 정신적으로 힘들어지기 시작. 

7월로 접어들면서 레스토랑 디시워싱도 시작. 일주일에 수,목 이틀만 하루 두시간씩 하는 일. 덕분에 수요일,목요일은 아주 하루가 어떻게 가는지도 모르게 지나간다.

7월 중순, 무릎 통증이 거의 나았지만 마음은 계속 심란함. 대체 내가 여기서 뭐하고있는것인지에 대해 한심한 생각이 들기 시작. 유럽여행을 포기하겠다는 고민을 심각하게 했음

7월 27일, 저녁 화장실청소를 그만두기로 결심. 8월 5일까지만 일할 것이다.

구직일기 1편에 비하면 별다른 내용이 없습니다. 저녁청소를 그만두기로 다 말해놓은 지금 상황.. 이제 카페나 레스토랑에 웨이터를 도전해볼겁니다.



 

How I have been so far in Melbourne.

2011/워킹 홀리데이 자유2011. 6. 26. 16:25

Three and half months have already past since I arrived here. Having meant to write this note on the exact day of turning into 3rd months, due to tiredness, only now I am writing this one.
What have I done in this city? There aren't much things that I can proudly say. I'll just trace back what i've done from the start.

On arrival, I opened a bank account from ANZ, registered a coffee school, and made a mobile phone. I was able to feel full proud of myself; I did all those things with no help, and the teller praised my English, which was the most significant factor to make me confident. Unfortunately, from just 2nd day I started to feel discouraged. The emotional gap based on race was much serious than I just had imagined. I had thought it might be no problem when I got to Australia, which was totally misunderstanding. Still I don't know what it is, and can't explain why I have felt like that, but I just say in that way. So I began to get along with Korean guys and girls like many others do. 

Anyway I had to find a place to live and get a job. Consecutive failure in telephoning made me totally unenthusiastic... and finally I chose to live with Korean guys. (BUT I do NEVER regret this decision. I have learnt more important things than improving English by living with my sharemates).

Next step was getting a job.  I had intended to become a barista in Melbourne having heard that there are plenty of cafes in the city. Practicing to making coffee in the coffee school, I tried to get the position, which was surely supposed to be tough. and finallly I gave up...
To be exact, I had one chance to do trial in a cafe just near Flinders station. Paradoxically, that was when I realized that I would not be able to do it. I was too clumsy like a dumb. What I can now know is, however, everybody cannot avoid being like a dumb at first time. I should have tried more sincerely or.. enthusiastically!

Life is full of what we can't expect. Just after I gave up the job, I was offered to be a salesperson. Honestly I felt really happy to do the work that I was going to make money by 'saying' and 'persuading' people to buy the goods. Alas, it turned out to be a bad job! there was no basic salary, and even the products did never sell well. 
I decided to quit the job after six days. They kept saying to me that 'Today is weird even I can't understand, but tomorrow it will be fine'. I couldn't see 'the tomorrow'. On the last day, I saw my supervisor only managed to earn $96 though we worked for the whole day. 

Luckily, within only one week I found other two jobs; a casual staff at Nando's and a cleaning job in a gym. Doing those two jobs, I could poignantly know that both how I can be seriously incompetent in particular area and there is definitely nothing done by itself. When it comes to the first job, for a period of one and half month I did never well in making burgers and wraps fastly, being scolded everyday. It was surely short period, but I seriously could know how significant it is to work in a field where I want to be , and can feel happy to do the position.
Doing second job, gym cleaning, I was able to be aware of the fact that there should be someone to do 'things'. While others spend their relaxed time or enjoy exciting moments, I had to clean the gym. I had to claen dirts from  those who work out to make their body more healty. For their leisure moment, I needed to put my effort for six days a week. It was something I could never feel when I was in Korea. I thought I became like a slave in archaic greek society. As the slaves had to sacrifice their everything to support a lucrative Athens society, I just sacrifice my time to support some others' pastime. I know now I'm exaggerating my experience. It's just because that's what I think the most proper simile, there being no any political or social meaning. Emphasis should be on my understanding of the fact there was nothing done by itself. Furthermore, living without parents, now I know how my mother and father have sacrificed their own life to support me and my sister, and our laziness. When I had to go somewhere in early time, I needed to wake up just 30 mins: wake up, eat what my mother prepared, wash up, and go out. Now I need to wake up at least one hour before departure. I should fix my own meal and, of course, wash the dishes. Sometimes there are laundry works, and naturally they're on me. 

 Now I'm working at two sites as a cleaner. I can't deny that I feel discontent with this way of living. At the same time, however, I can admit I have learnt so many things that I would never know if I stayed just in Korea.

Due to my lack of writing skill, this note is being written different from what I first meant. Things regarding friendship and normal living will be posted later.
There are many subjects I want to describe. Please wish me luck and vitality that I can continue writing these ones.
And I wish all of you luck on everything you guys are doing.        

p.s) When you find improper word usages or grammatical errors, don't mind letting me know. I'd appreciate you :)                                                                                                                                           

빅토리아주 제2의 도시, 질롱에 다녀왔습니다!

2011/워킹 홀리데이 자유2011. 6. 13. 20:39

멜번에서 갇혀 지내다가 간만에 외곽에 나갔다 왔습니다. 예전부터 다녀오고 싶었던 빅토리아주 제2의 도시 질롱!

마셜행 브이라인 기차를 타면 됩니다! 존 1+2까지 포함해서 왕복 13.40불이네요ㄷㄷ
Take V-line train toward Marshall. The ticket includes Zone 1,2 and costs $13.40.

일단은 메트로 트레인과 같은 노선을 따라갑니다.
At first, it follows the same line as Metro.

역 사진을 안찍었네요.. 아무튼 질롱 해변가에 가시면 저렇게 토마스 기차도 다닙니다! 저희는 가난한 워킹이기 때문에 저런데에 돈을 쓸 수가 없지요ㅋㅋ
I didn't take a picture of the station. Anyway, you can find Thomas! but we couldn't take it as we are poor working holiday makers ^^

헬리콥터도 탈 수 있습니다! 그치만 위와 같은 이유로 생략^^
There is also a helicopter you can ride! But we skipped it for the same reason^^.

해변가를 따라선 산책로~
A road along the beach~


질롱 해변가, 질롱 정원 곳곳에는 이렇게 나무로 만든 조각상(?)이 많이 있습니다. 대부분 친구들과 함께 찍은 사진이라 다 올리진 못하겠네요ㅋㅋ
You can find lots of wooden statues like them around Geelong! But most of the pictures taken include my friends, so I can just upload those two pics.

탁 트인게 보기 좋습니다 정말ㅋㅋ
looks good! the wiiiiide skyline and greeeen lawn.


해변가에 위치한 카페인데.. 카페 이름이 기억나질 않네요ㅜㅜGiancarlo는 커피 회사 이름이구요. 그치만 커피가 정말 맛있었습니다! 

A cafe located near the beach. I can remember the name of the place... Giancarlo is a name for the coffee bean provider. Anyway, the coffee was really really tasty!
 

별다른 설명은 없습니다ㅎㅎ
Nothing special!

질롱 정원으로 고고!
Move toward the Botanic Garden!

와이파이 신호처럼 생겼길래..
seems like WI-FI!

향기가 정말 좋았던 장미꽃. 외롭게 피어있네요ㅜㅜ
This rose smelled fantastic! but it seems little lonely :(

정말 보기 좋았던 뒷모습이에요. 
They looked so much beautiful..!




은행나무를 보니 어찌나 반갑던지.. 빅토리아주에서 특별히 관리하는 나무들 가운데 하나라고 하네요!
I was so pleased to see this ginkgo tree! It's one of the significant trees in Victoria state.

생각보다 규모가 크진 않았지만 분위기가 아주 좋았습니다ㅋㅋ
The size of the garden was rather small, but it was a truly beautiful garden.


슬슬 어두워지기 시작합니다.
getting darker!
 


왜 유명한지는 모르지만 하여간 유명한 이 돌들! 다른 사람들은 대부분 맨처음에 보는데 우리는 돌아가면서 봤네요ㅜㅜ 
The famous stone in Geelong!(but I don't know why) Most people see this at first, but we could see this on the way back.

기차역으로 돌아가면서..
Way back to the station.

질롱 역에서 5시 33분 기차를 타고 다시 돌아온 서던 크로스 역입니다.
We took a train to Southern Cross at 5:33. Here is Southern Cross.

 저녁은 스완스톤 거리에 있는 완톤 하우스에서! 아.. 여기 말고 다른데도 좀 뚫어야 하는데 ㅜㅜ
Dinner at Wonton house on Swanstone St.! I should find somewhere else..... 

저녁까지 먹고 사우스뱅크를 따라 산책을 좀 했습니다. 사실 크라운 카지노도 구경하고 왔지만 배터리가 다 되어버려서 사진을 못찍었습니다ㅜㅜ

Took a walk along south bank. Actually we got to the casino, but due to the running out of battery for camera, I couldn't take pictures mo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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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딘가를 갔다와서 여행기 형식으로 글을 써본건 처음인데요.. 참 허전하네요ㅋㅋㅋ 여행기라는게 쉽게 쓰여지는게 아니군요ㄷㄷ
It's my first time to write this kind of article. I mean.. journey? This is too lax.. I hope I can write this kind of articles more wonderfully next tim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