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일이 끝난 9월 18일의 일기

2011/워킹 홀리데이 일기2011. 9. 19. 00:23

글을 쓰기 시작하는 지금 시간이 이미 19일로 넘어가는 밤 1시다. 그래도 오늘은 꼭 일기를 남겨야겠다는 생각에 이렇게 글을 쓴다. 펜으로 일기장에 쓰는 게 훨씬 좋겠다는 생각은 있지만, 시간도 늦었고 좀 피곤한 감도 있기에 컴퓨터로 써야겠다.

9월 18일을 마지막으로 호주에서 '일'을 하는 생활이 드디어 끝났다. 몸이 힘든 날도 많았고, 마음이 힘든 날도 많았던 지난 6개월. 내가 대체 여기서 뭘 하고있는건지 알수가 없었으며 유럽여행은 왜 가겠다고 결심해서 이 고생을 하고있는지에 대한 생각으로 나자신을 이해할수 없었던 순간순간들이 지나고 지나 결국 오늘이 왔다.

아침 9시 15분경 레스토랑을 나와 집으로 돌아가는데, '주마등처럼 스쳐간다'라는 말이 어떤 의미를 품고있는지 한 순간에 느낄수 있었다. 처음 도착한 날의 설레임, 쉐어룸을 구하기 직전의 혼란, 첫 일을 시작하기 전의 길지는 않았지만 깊었던 고민과 불안감, 즐겁지 않은 일을 하면서 느꼈던 수많은 감정들.. 그리고 정말 즐기면서 할수 있는 일을 찾은 뒤 알게된 일의 보람.

6개월의 시간이 흘렀다. 지나고 보니 참 별 것 아니었던 일들이 당시에는 왜그렇게 무겁게만 느껴졌는지 모르겠다. 포기하고 싶었던 순간도 참 많았고, 워킹이고 유럽이고 뭐고 다 내팽겨치고 집으로 돌아가고 싶었던 순간도 많았다. 지금 포기하면 평생 후회할것이라는 고차원적인 이유 하나, 한국에 돌아가버리면 주위 사람들에게 창피할것같다는 단순한 이유 하나, 솔직히 말하자면 이곳 생활을 정리하는것마저도 귀찮아했던 나의 나태함까지 더해져 지금까지 올수 있었다.

최근에 쓴 포스팅에서는 나 자신을 실패한 워홀러로 묘사했는데... 사실 지나고 보니 나 자신에게 큰 도움이 된 지난 6개월이기에 충분히 성공한 워홀러라고 말해야 할 것 같다. 남들보다 재미없게, 남들보다 외롭게, 남들보다 단조롭게 생활했지만, 누구의 도움도 없이 혼자 건너와 집을 구하고 일자리를 구했고 목표했던 만큼 돈도 벌었고 마지막으로... 세상을 조금은 알게 되었다.

오늘은
 날씨가 정말정말 좋았다. 마치 3월 15일 멜번에 도착하던 바로 그 날의 날씨처럼. 힘들고 또 힘들었던 6개월 일의 나날이 끝난 오늘. 내 머리 위 내리쬐는 햇살, 내 볼을 스쳐지나가는 바람, 햇살과 바람에 동시에 흩날리는 가로수 나뭇잎까지 모두 다르게 느껴지고 다르게 보였다. 

죽지 않을 만큼의 고난은 우리를 성장하게 한다는 말이 맞나보다. 힘들고 괴로웠던 지난 시간을 지나보내고 모든 일을 마무리지은 오늘, 나 자신의 됨됨이가 한 뼘은 자란 느낌이었고 '성취감'이 무엇인지 정말 오랜만에 다시한번 느꼈다.

이제 유럽을 향해 나아갈 일만 남았다.




 




 

성공적인 워킹홀리데이?

2011/워킹 홀리데이 자유2011. 8. 14. 21:39

호주 워킹홀리데이를 준비하는 분들이라면 누구든지 '성공적인' 워홀 생활을 꿈꾸고 계실 것입니다. 저도 현실적으로 생각하려고 마음을 가라앉히려 많이 노력했었지만, 이곳에 도착하기 전까지 약간이나마 부푼 꿈을 안고 있었습니다. 외국인 친구와 친해지고, 실생활에서 영어를 쓰게되면서 자연스럽게 영어실력을 늘리고, 남부럽지 않은 직업을 구해 돈도 벌고 경험도 쌓고, 마지막으로는 그렇게 모은 돈으로 화려한 여행을 하고....

3월 15일 아침에 멜번의 아침을 처음으로 맞이했고 오늘이 8월 14일이니 이제 오늘만 지나가면 정말로 멜번에서 지낸지 5개월이 지나게 됩니다. 지금까지 제가 지내온 모습들을 앞서 말한 '성공적인' 워홀 생활에 짜맞춰보자니 별로 맞아떨어지는 짝이 없습니다. 솔직하게 말해서 정말 친구라고 부를만한 외국인은 하나도 없습니다. 실생활에서 영어를 쓰기 위해 외국인들과 함께 사는 집에 들어가려고 했었으나 결국 초반에 영어로 통화하는데 어려움을 느껴 한국인 집에 들어와 지금까지 살고 있습니다. 덕분에 자연스럽게 영어실력을 늘리진 못했구요. 남부럽지 않은 직업을 구하고 싶었기에 처음에 주제도 모르고 날뛰었지만, 말도 안되는 다단계 업체부터 시작해 한국 식당, 저녁 체육관 청소, 제가 일을 얼마나 못하는지 일깨워준 난도스, 건물 화장실 청소를 거쳤습니다.
다행히 이제는 원래 아침에 청소만 하던 레스토랑에서 웨이터와, (가끔씩 바쁠때만!) 바리스타 일을 시작했습니다. 다행히 돈은 그럭저럭 벌어서 어느새 호주 도착 후 적자였던 통장잔고가 흑자로 돌아섰습니다. 여행은 이제 계획을 짜고 있구요..

성공적인 워킹홀리데이 생활이라고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외국인 친구'와 '자연스러운 영어 늘리기'는 완벽히 실패했습니다.[각주:1]

이 글은 실패자의 입장으로 워킹홀리데이를 준비하는 분들에게 당부드리고 싶은 말을 전하는 글입니다. 지금 여러분들은 인터넷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며 워홀 '수기'를 찾아 읽고 계실겁니다. 만일 꾸준히 연재되는 수기가 있다면, 대체로 나름대로 '성공적인' 삶을 살아가는 워홀러들의 수기일 것입니다.

성공적인 몇몇 워킹 홀리데이 메이커 뒤에, 자기 자신의 이야기를 말하기 꺼려하는 수천 수만명의 워홀러들을 생각하시기 바랍니다. 시작하기도 전에 기를 죽여서야 안되겠지만, 출발 전 유학원 설명회에서 들은 바로는 한 해 호주로 입국하는 한국인 워홀러가 '4만 명'이라고 합니다. 과장해서 그들중 절반이 세컨비자를 받는다고 친다면, 한 해에 호주 전역에 대략 6만여 명이 워킹홀리데이 생활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6만 명 가운데 성공적인 몇몇의 이야기를 듣고 여러분들이 그렇게 될 수 있다고 막연이 기대하지 마시길 부탁드립니다.

호주는 영어권 국가이기에 영어는 절대적으로 '기본기'입니다. 여기 와서 영어를 배우겠다는 생각은 절대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호주는 영어를 '말하기 위해, 쓰기 위해' 오는 곳이지 영어를 '배우러' 오는 곳이 아닙니다.

한국에서 여러분들이 해봤던 그 어떤 일보다 힘든 일을 하며 살아가게 될 가능성이 큽니다. 다문화주의를 자신들의 자랑으로 여기고 다민족 사회를 강점으로 내세우는 멜번[각주:2]이지만, 제가 보는 멜번의 모습은 아직까지도 인종에 따른 직업분화와 생활양식의 차이가 존재합니다.
편의점 어디를 둘러봐도 백인은 일하지 않습니다. 중국인과 인도인이 일하고 있습니다. 도시의 표면적인 위생과 미화를 담당하는 '큰' 청소일은 백인이 합니다. 직원들이 퇴근한 뒤 썰렁한 건물에 남아 하는 사무실, 화장실 청소는 유럽계, 남미계 이민자들과 동양인들이 합니다. 동양인들도 자주 찾는 식당과 카페에는 동양인도 일합니다. 백인들만 자주 찾는 식당과 카페에는 대체로 백인들만 일합니다. 어둠이 내리깔린 도시의 표면은 더욱더 갈라집니다. 은은한 조명 아래에서 그들의 'Dinner'를 즐기는 자들은 백인들입니다. 자국민이 운영하는 작은 식당, 혹은 패스트푸드, 누구나 갈 수 있는 스타벅스에는 인도인과 동양인들이 넘쳐납니다. [각주:3]

이 곳에 오면 저절로 일자리가 생기는 일은 절대 없습니다. 혹시 일자리를 얻게 된다면, 처음엔 좋지 않은 근무조건일 가능성이 매우 높습니다. 처음부터 모든게 잘 풀리는 사람이 없지는 않을것입니다. 그러나 이곳은 분명히 다른 문화를 가진 다른 나라이며, 이곳의 규칙과 분위기를 모르는 초보 구직자에게 좋은 기회가 돌아갈 가능성은 매우 적습니다. 힘들게 생활하실 것을 무조건 각오하시고 오셔야 합니다.

마치 중.고등학생 시절 '누가 이렇게 저렇게 해서 성적을 올렸다'라는 말만 듣고 그대로 따라했다가 다음 시험에서 별 재미를 못 보는 것과 비슷한 것이라 생각합니다. 
영어 하나만큼은 많이 준비해서 오시길 바랍니다.[각주:4] 힘들게 생활하게 될 것이라 단단히 각오하고 오시길 바랍니다. 

부푼 꿈을 한 수 접고, 자신의 현재 모습을 냉정히 바라보고, 떠도는 풍문 뒤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의 눈물과 좌절이 숨어있을지 상상하시기 바랍니다. 

그렇게 준비된 분들이라면 저는 실패해버린 위의 목표들을 달성하고 멋지게 워킹 생활을 즐기다 돌아가실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1. 영어실력 '늘리기'에 실패했다는 말입니다. 저는 한국에서 영어를 매우 많이 준비했습니다. [본문으로]
  2. 위에서는 일반적인 '호주'에 대한 이야기를 했지만, 이제부터는 제가 경험한 '멜번'만을 얘기합니다. 다른 도시는 가보질 않아서 모르겠습니다. [본문으로]
  3. 멜번이 신분제 사회는 아니기에 누구든지 자기가 가고 싶은 곳에 갈 자유는 있고, 제가 방금 말한것과는 반대로 얼마든지 자유롭게 '그들'의 문화에 동참하는 워홀러들이 있습니다. 바로 그런 분들이 거리낌 없이 자신들의 생활과 즐거움을 지인들에게 말하고 인터넷에 글로 표현할 것입니다. [본문으로]
  4. 본문과는 조금 다른 어조 말해보겠습니다. 솔까말 우리가 여기 영어학원에 돈 가져다 바치려고 온건 아니잖습니까? 이왕 온거 이딴 나라에 돈 퍼주기보단 왠만하면 좀 빼먹고 가자구요. [본문으로]

호주 워킹홀리데이 B. 멜번 워킹홀리데이 구직일기 2탄

2011/워킹 홀리데이 일기2011. 7. 30. 00:11

4월 21일 난도스에서 트라이얼을 한 후 바로 다음날부터 일하기 시작.
 - 다음날도 다다음날도 그리고 거의 일주일간 설거지만 죽어라 함 : 이스터 홀리데이 기간이었기에 식당이 내내 바빴다. 음식을 빨리빨리 만들어야하는데 나같은 초보가 느릿느릿 일할수는 없었으니까..

그런데 문제는 그 다음이었다. 이자식들.. 차근차근 제대로 알려준적도 없으면서 사사건건 잔소리를 해댔다. 지금 생각해보 참 거지같았던 경우 하나 : 일을 시작한지 4주가 조금 넘었을때, 가게 문을 여는 시간에 일을 하게 됐다. 주인도 같이 나왔었는데, 내가 일하는걸 보더니 대체 왜 4주가 지나도록 아직도 아침에 뭘 해야하는지 모르냐면서 면박을 줬다. 일을 시작한지 4주가 지난건 맞지만 그때까지 아침에 일해본건 3번밖에 없었고, 그나마도 단순히 '이거 해라, 저거 해라'같은 단순지시였다. 단 한번도 아침에 문을 열때는 무슨 일들을 어떤 순서대로 해야하는지 지도받아보지 못했는데, 그걸 못한다고 혼이 났다.

그래도 인정하는건, 솔직히 내가 일을 잘 못하긴 했다. 주문이 밀려들면 당황해서 실수를 계속 저질렀고, 손님들이 불만을 얘기한적도 있었다. 아무튼 결국.. 6월 5일에 잘렸다.
 
6월 6일 난도스에서 잘린지 하루만에 저녁청소일을 구했다. 한국인 컨트랙터가 껴있는 일이긴 했지만, 시급이 16불이었기에 바로 시작했다.

6월 11일, 집앞 레스토랑에서 연락이 왔다. seek.com에서 그 식당이 청소부를 구한다는 광고를 보고 이력서를 냈었는데, 다음주부터 일을 시작하자는 연락이었다. 이건 시급 17.75불.

6월 13일. 아침에 3시간 레스토랑 청소, 저녁에 4시간 건물 화장실 청소를 하는 투잡생활 시작.

6월 중순부터 무릎 통증 시작. 육체적으로 힘든 시기에 어설프게 운동을 시작했다가 결국 무릎에 무리가 오기 시작했다. 게다가 상황을 더 악화시킨건 바로 사이즈가 맞지 않았던 안전화! 

6월 말, 안전화를 신지 않으면서부터 무릎 통증이 조금씩 완화.

6월 중순부터 대략 한 달간, 얼마 있지도 않았던 멜번 친구들 중에 세 명이 한국으로 돌아가버리는 일이 생겼다. 몸의 피로와 함께 정신적으로 힘들어지기 시작. 

7월로 접어들면서 레스토랑 디시워싱도 시작. 일주일에 수,목 이틀만 하루 두시간씩 하는 일. 덕분에 수요일,목요일은 아주 하루가 어떻게 가는지도 모르게 지나간다.

7월 중순, 무릎 통증이 거의 나았지만 마음은 계속 심란함. 대체 내가 여기서 뭐하고있는것인지에 대해 한심한 생각이 들기 시작. 유럽여행을 포기하겠다는 고민을 심각하게 했음

7월 27일, 저녁 화장실청소를 그만두기로 결심. 8월 5일까지만 일할 것이다.

구직일기 1편에 비하면 별다른 내용이 없습니다. 저녁청소를 그만두기로 다 말해놓은 지금 상황.. 이제 카페나 레스토랑에 웨이터를 도전해볼겁니다.



 

또 한번. 호주에 와서 만나는 나의 실체에 대해.

2011/워킹 홀리데이 자유2011. 6. 3. 17:27

한국에서 지내는 동안 누구나 그렇듯 가끔씩 침울한 감정에 빠지기도 하고, 슬럼프라고 부르는 장기간 침체 상태에 빠지기도 했지만 나는 기본적으로 항상 '나'라는 존재에 대해 자신감이 넘쳤고, 내가 하는 모든 일은 잘 풀리게 되어있다고 생각했다. 실제로 호주에 오기 전까지 내가 이루고자 했던 것들은 대체로 모두 이루었다. 긴 글이 되겠지만 이렇게 쭉 정리해서 쓰고 싶다..

고등학교 3학년 시절 누구에게도 부끄럽지 않게 공부를 열심히 했다. 정말 솔직하게 말하면 딴짓을 아예 안한건 아니었다. 그래도 수험기간 내내 피씨방, 플스방, 영화관에 한번도 가본적이 없고, 동아리 후배들과의 모임때문에 노래방에만 딱 두번 갔던걸 제외하면 딱히 뭘 하면서 놀아본 기억은 없다. 타고난 머리가 남들만큼 못해서, 그리고 조금 부족한 꼼꼼함 때문에 원하던 고려대학교에 들어가진 못했지만 성균관대에 입학할 수 있었고, 지금까지도 난 우리학교를 사랑한다.

수능 이후 주어진 자유시간. 누구나 그렇겠지만 핑크빛 캠퍼스 생활을 꿈꾸었던 나는 다이어트를 시작했다. 지금 생각하면 정말 어떻게 그렇게 했는지 모르겠다싶을 정도로 독하게 했다. 매 끼니를 아주 적은 양의 밥과 두부, 야채로만 채웠고 열심히 운동을 했다. 두달이 지나자 16kg이 내 몸에서 빠져나갔다. 다이어트도 성공.

대학 신입생의 첫 여름방학, 무슨 바람이 들어서 그랬는지는 모르겠지만 당시 처음 선보였던 내일로 티켓을 이용해 일주일간 우리나라 여행을 했다. 8월 24일까지 마지막 과외수업을 하고 26일엔 그 해 카투사 지원을 위한 토익을 보고 27일 집을 떠났다. 글을 쓰다보니 새벽 5시 50분쯤 집에서 출발할 당시가 떠오른다.. 아무튼 광명시에서 출발해 땅끝마을 해남부터 임진각까지 내 나름의 전국여행을 했다. 여행을 성공적으로 마친 후 자신감으로 충만했을 그때 토익점수가 나왔다. 가채점 결과와 거의 같았다. 875점. 처음 본 시험이었지만 기대 이상으로 잘 나와준 결과에 기분이 정말 좋았다.

1학년 2학기는 공부를 열심히 했다. 대계열 입학생이었던 나는 좋은 전공 진입을 위해 좋은 학점이 필요했지만 1학기 성적이 영 별로였다. 약간의 꼼수를 부렸고, 전공 진입시 계산되지 않는 과목은 포기한채 필요한 과목만 공부를 했다. 이번에도 성공. 영어영문학과에 진입할수 있었다.
2학년. 전공을 배정받고 새로운 사람들을 만났다. 내가 능력이 좋아서가 아니라 특수한 환경 덕분에(때문에?) 과 학생회 대표일을 맡았다. 그릇에 비해 턱없이 부족했던 능력, 동시에 쓸데없이 컸던 꿈 때문에 1년간 마음고생을 많이 했다. 그래도 항상 내가 좋아서 했던 일이고, 좋은 친구들
과 선배들을 만날수 있었기에 후회는 없다.

고등학교 1학년 겨울방학부터 날 괴롭히던 어깨탈골.. 결국 재검을 통해 4급판정을 받았다. 2009년 겨울 장애학생보조 공익근무를 시작했다. 2년간 우리 아이들과 정말 행복한 시간을 보냈다. 가끔씩 장애인 관련 다큐멘터리를 보거나 하면 우리 아이들 생각에 아직도 눈물을 흘릴때가 있다. 근무기간동안 책을 많이 읽고 싶었다. 24개월동안 200권에 조금 못 미치는 책을 읽었다. 함량미달인 책도 많았고, 채 100쪽도 되지 않는 지식총서류도 다수 끼어있지만, 그전까지 1년에 단행본 한 두권 읽을까 말까 하던 나이기에 대단한 성과였다. 영어공부도 놓지 않았다. 삶이 쳐진다고 느껴지던 시절 토익에 응시했다. 무료하고 축 쳐지는 일상을 탈출하고자 응시한 시험. 950점. 다시 활력을 되찾았다. '역이 난 하면 된다니까'.

어느순간부터 소집해제 후 장기간의 해외여행을 꿈꾸기 시작했다. 그에 이어 결정한 호주 워킹홀리데이. 현지에서 일을 구할때 조금이나마 도움이 될까 싶어 응시한 아이엘츠 제네럴. 결과는 밴드 스코어 7.0이었다. 

고등하교 3학년때부터 한국 나이 23살이 될때까지 난 저렇게 살아왔다. 뭐든지 정말 마음먹고 도전한 일엔 좋은 결과가 따라왔다. 다만 한가지 계속해서 실패했던건, 대학교 2학년 이후에 시도했던 다이어트들... 그러나 운동은 나랑 안맞는가보다라는 생각으로 별다른 생각이 없었다. 그렇게 나는 내가 무슨 대단한 인재까지는 아니더라도 내 자신을 '고급인력'이며 '유능한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호주에 도착한지 두달 반이 지났다. 여기 와서 나의 실체를 적나라하게 마주하고 있다.

나는 사실 누군가의 도움 없이 혼자서 딱히 할줄 아는 요리도 없었다. 공익근무기간동안 우리 아이들과 매주 요리교실에 참여하긴 했었지만, 요리 과정을 제대로 눈여겨 본 적이 없다. 사람이 집을 나와 살려면 먹을것도 알아서 해야하는 법인데, 요리를 못하니.. 매일 먹는게 거기서 거기다.

돈을 번다는 행위, 즉 노동이라는 행위가 얼마나 힘든 것인지도 몰랐다. 한국에 있을때 과외만으로 돈을 벌어봤기에 몸을 움직여 다른 사람의 돈을 받아내는게 이렇게 힘든 것인줄 몰랐다.

내세울게 없어졌다. 개인적으로 한국의 특수한 '학벌' 문제는 반드시 해결되어야 하는 현상이라고 믿고 있었다. 어쨌든 존재하고 있는 대학 서열에서 1등은 아닐지언정 어딜 가도 뒤지지 않을 간판을 가지고 있었지만 학교이름으로 다른 사람을 무시하거나 나를 내세우지 않았다. 그런데 알고보니 그렇게도 싫어하던 학벌이 내 자신감의 근원이었다. 내가 나를 고급인력이라고 생각하게 만들어준 큰 요인이었다. 학교 이름을 빼자 난 여기서 내세울 수 있는게 하나도 없어졌다. 그렇다고 일을 잘하겠는가? 내가 지금까지 해왔던 일들은 펜을 굴리고 머리를 써서 하는 일이었다. 몸을 쓰는 일이 아니었다. 해본적이 없는데 잘할리가.... 군대 안갔다와서 그런거라고 누군가가 말할 것 같다. 맞다. 군대 안갔다온 놈이라서 그렇다. 어쩌겠는가.. 이미 지나간 시간.. 일하는 식당이 있긴 하지만 매일매일 눈치만 본다. 미운오리새끼가 된 기분이다. 


식당에서 매일 인도 직원들에게 무시당하면서, 반사적으로 '나도 한국가면 고급인력이다 씨발' 이렇게 마음속으로 외친다. 외치고 돌아서면 씁쓸하다. 아 난 정말이지 제대로 할줄 아는게 없구나.....

오늘도 약자의 마음으로 하루를 보내고 있다. 
 

한국에선 나자신을

2011/워킹 홀리데이 자유2011. 5. 28. 23:07
정직 성실 끈기있음

등등으로 자평해왔지만

여기 와보니 아니었다.

밤샘청소하던날 뼈저리게 느꼈다.

난 일도 못하고, 또 몸이 힘드니까 적당한 선에서 마무리지었고, 그나마도 제대로 처리하질 못했다.



규칙을 엄수한다고 생각했지만
교통비 몇달러가 아깝고 무료트램 기다리는 시간이 귀찮아 70번을 그냥 탔다가
인스펙터를 만났다..



 

경쟁이 어떻게 내면화되는지는 모르지만, 내 속에 확실히 내면화되어있다.

2011/워킹 홀리데이 자유2011. 5. 28. 23:05

호주에 워킹 홀리데이 메이커 혹은 워홀러로 지내면서, 한국에 있을때 미처 알지 못했던 나의 모습들을 많이 발견하게 된다. 지금 쓰고자 하는 주제는 바로 '경쟁심'


여기 오기 직전 읽다 만 책이 있는데, 강수돌 교수가 쓴 『경쟁은 어떻게 내면화되는가』라는 책이었다.                                                                                 

정확히 말하면 '읽다 만' 책이 아니라 몇 쪽 들춰보고 만 책이라고 해야겠다. 제대로 다 읽고 왔다면 좋았을 것이라고 생각하게 된 일화가 있다.




구직일기를 보면 알 수 있겠지만, 4월 초에 딱 6일간 세일즈 일을 했었다. 실제 현장에 나가 판매일을 하기 전날, 회사 사무실에서 나를 비롯한 새로운 사원 네명이 교육을 받았다. 세일즈의 기본 자세, 우리가 판매하는 상품의 특징, 판매 전략 등등 상상 가능한 범위 내의 교육이었다. 매니저의 직접 설명, 영상자료 시청, 관련 서류 숙지 등으로 이어지는 교육이었는데, 매니저가 회사와 직원의 관계에 대한 조항을 읽어보라고 말하고는 잠시 자리를 비웠다. 10분정도면 다 읽을만한 내용이니 그 사이 자신은 다른 일을 처리하고 오겠다는 것이었다.

계약 관련 조항을 읽어나가던 가운데 내가 무슨 짓을 하고있는지 발견하고는 깜짝 놀랐다. 당시 회의실에는 나, 뉴질랜드 출신 Ethan, 일본인 Mori, 이름이 기억나지 않는 호주인 이렇게 네 명이 있었다.

문서를 읽는 틈틈이 Ethan과 그 호주인이 얼마나 빨리 읽어가고 있는지, 내가 얼마나 뒤쳐지고 있는지를 계속해서 생각했다. 물론 일본인 Mori보다 내가 얼마나 많이 앞서가고 있는지도 계속 생각했고......

그러고 있는 내 모습을 보면서 적잖이 당황했다. 고등학교 시절 모의고사 외국어 영역 독해 문제를 풀면서 다른 친구들이 얼마나 풀고 있는지를 틈틈이 확인하던 그 버릇, 그 경쟁심이 아직도 내 마음속에 자리잡고 있었다. 이 글을 쓰다보니 더욱더 선명하게 떠오른다. 왼쪽 대각선 앞에 앉아있던 우리반 1등, 아니 전교 1등이 몇 쪽의 몇 번 문제를 풀고있는지 확인하기 위해 그 친구 등 너머로 슬쩍 넘어봤던 그 시험지의 모습, 그리고 그 친구의 뒷모습..


영어가 제2언어인 내가 호주, 뉴질랜드에서 나고 자란 사람들보다 영어 문서를 느리게 읽는건 당연한 일 아닌가?

경쟁이 어떻게 개개인에게 내면화되는지는 나는 잘 모른다. 그러나 한가지 확실한 점은 내 속엔 이미 경쟁심이 내면화되어있다는 것이다. 경쟁, 제로섬을 지양하며 협력, 공존을 지향하고 있던 내 관점은 아직 머리속에만 머무르고 있었다.

미처 발견하지 못했던 나의 이런 모습들을 발견하게 해주는 호주 워킹홀리데이... 



매일매일 심심하고, 가끔 심란하고, 성공에서 멀어지며 실패로 수렴해가고 있는 워홀 생활을 생각하면 또 가끔 슬프지만..

좀 더 고상하게 생각하면 오길 잘했다는 생각이 아직까지는 지배적이다.

적어도 이렇게 나에게 계속 글감을 주고 있지 않은가?
 

호주 워킹홀리데이 A. 멜번 워킹홀리데이 구직일기

2011/워킹 홀리데이 일기2011. 4. 21. 17:46
3월 15일 도착, 도착하자마자 커피코스[각주:1] 등록
 
3월 22일 처음으로 이력서 인쇄- 아래 커버레터와 이력서를 50장 복사. 카페에만 지원함


영어이름때문에 고민을 좀 했는데, 원래 내 이름의 발음을 조금이라도 유지하고 싶었고, 그렇다고 Joe나 John처럼 뻔한 이름은 싫어서 Joel로 결정! 그치만 나중에 결국 바꾼다..

구직 초반에 저지른 엄청난 실수 : 디그레이브스 거리 모 카페에서 오전 파트타임으로 샌드위치 만드는 일을 해보겠냐는 제의를 받았지만, 시급 '캐쉬' 13불이라는 말에 거절.. 그땐 나정도면 당연히 수월하게 택스잡을 구할수있을거라는 크나큰 착각을 하고 있었다.[각주:2] 

3월 25일 D레스토랑에서 키친핸드 트라이얼 세시간 
 : 시립 도서관에 한국어를 공부하는 외국인이 있길래 얘기를 좀 나눴는데 그친구가 소개해준 자리. 결국 구직에 실패하긴 했지만 이때 인맥으로 일을 구한다는게 이런거구나 하는 생각을 처음으로 했음.

3월 30일. 이력서 첫번째 수정 - 오로지 카페에만 지원하고있던 상황이었기에 커피 얘기를 조금 추가. 그리고 드디어 진짜 '뻥'을 치기 시작. 한국에서 아르바이트 경력이 전혀 없었지만 2008년 커피샵에서 일한걸로 뻥을 치고, 한국에 있으면서 영어로 대화가 가능한 친구 폰번호를 적어놨음. 감당할수있는 사람이라면 한국 경력을 거짓으로 적어도 되겠지만, 개인적으로 이 방법은 절대 비추천. 결국 나중엔 거짓 부분을 지웠음



4월 1일. K 백패커 청소일을 놓치다. 택스 16불짜리 청소일이었는데, 전날밤 호주바다에서 광고를 봤다. 사장이 아침 9시부터 오후 세시까지 있으니 그 사이에 이력서 들고 방문해달라는 글을 보고는 11시쯤 여유있게 가봤다. 그랬더니 이게 왠걸. 사장이 출근하기도 전에 와서 기다리고 있던 사람이 있었고, 그사람한테 일을 줬단다. 내가 아직 덜 배고프고, 일을 구하는 태도가 글러먹었구나(..) 하고 자조하기 시작.

4월 2일 한인 가라오케 업소에 지원했지만 밤 9시부터 새벽 5시까지 근무해야한다는 말에 생각해보다 결국 포기. 난 잠없이는 못산다... 시급은 캐쉬14불이었기에 괜찮은 편이었음. 정말 너무 기운이 없었고, 간만에 펜으로 일기를 썼다. 지금 보니 [진짜 그냥 집에 가고싶다.]라고 써있다.

4월 3일. 금~토(1~2일) 연이은 실패에 한참 풀이 죽어있었지만 이대로 무너질수는 없다는 생각에 다시한번 이력서 수정하고 집을 나섬. 이때부터 카페 말고 다른곳에도 본격적으로 지원하기 시작함.

오전부터 이력서를 돌리기 시작했는데 낮 한시쯤 L 카페에서 전화가 왔고 바로 트라이얼로 세시간 일함. 트라이얼을 끝내가는데 S한국식당에서 또 전화가 옴. 바로 달려가서 일하기로 결정. 하루만에 낮에 할 일과 저녁에 할일을 모두 잡아버림. 그리고 집으로 돌아가는 트램에서 호주 현지 '마케팅' 회사에서 전화가 와 화요일에 인터뷰 약속을 잡음. 갑자기 행운이 몰려오는듯해서 엄청 기뻤던 날. 물론 오래가진 않았다.

4월 4일. 카페 트라이얼 도중 실수를 해서 사장한테 찍힘. 그래도 기회를 절대 놓치기 싫었던 나는 바로 커피스쿨로 달려가 네시간동안 연습을 했고, 가장 잘 나온 라떼아트 동영상을 들고 다시 L카페로 찾아가 사정을 했고 다음날 하루 더 나와보라는 허락을 받음. 저녁엔 S한국식당에서 일함.

4월 5일. 세번째 카페 트라이얼을 마치고 나니 매니저 曰 '난 너를 고용할 이유가 없다. 지금 멤버로도 충분하지만 널 써본 이유는 지금 일하고있는 바리스타가 6월에 떠날 예정이기때문에 그를 대신할수있는지 알아보기 위해서였지만, 지금 너의 실력으로는 부족하다. 그렇지만 니가 이렇게 매일 와서 어깨너머로 배우고싶다면 그건 니 자유다. 대신 내 앞에서 제대로된 커피를 만들기 전까지 난 돈을 줄수가 없다.' 
결국 내 실력으로 멜번에서 바리스타가 된다는건 하늘의 별따기라는 결론을 내렸고, 괜찮은 실력을 갖추기까지 얼마나 더 연습해야할지 가늠할수가 없었기에 바리스타 일에 대한 미련을 깨끗하게 버렸다.

바리스타 일을 포기하니까 3일에 연락받았던 호주 '마케팅' 회사에 아무 거리낌 없이 인터뷰를 보러 감. 그날따라 영어가 '대박' 잘나왔고, 쉽사리 합격했다. 사실 말이 좋아 마케팅 회사였지, 그냥 다단계 세일즈 회사였다. 
워킹 와서 '세일즈' 일을 한다는 애기를 못들어봤기에 내가 이런 일을 할수있다는게 마냥 신나고신기했다. 그리고 사실.......... 약간의 자뻑도 느꼈다. '영어공부 열심히 해 온 보람이 있구나!' 이틀 전 최악의 상황에서 갑자기 구직에 성공했기에 일희일비하지 말자는 생각을 하긴 했지만, 기분이 계속 좋은걸 어쩔수가 없었다.
그리고 이어진 경솔한 선택. 하루 일한 S한국식당에 다시 찾아가서 호주 회사에 취직되었기에 일을 못나올거같고 말씀드리고 나왔다.

4월 6일. 세일즈 관찰의 날. 실제로 일을 하지는 않았고 현재 직원들이 어떻게 일을 하는지 두시간정도 옆에서 보기만 했다. 그런데 이게 왠걸? 하나에 40달러나 하는 자동차 클리너가 두시간동안 열 개 넘게 팔렸다. 그리고 일하고있던 중국 대학생 曰 '이걸 하나 팔때마다 회사한테 20달러를 주면 된다. 그런데 이게 원래 40달러다. 그러니까 하나를 제대로 팔면 20달러를 버는거다. 그렇지만 얼마에 팔든 그건 너의 재량이다.' 하나 팔때마다 20달러라는 말에 대박을 건졌다는 생각을 했다. 이렇게 잘 팔리는 제품이라면 당장 일해도 되겠다!

4월 7일. 세일즈 오리엔테이션. 회사 사무실에서 세일즈의 기본과 판매 제품에 대한 오리엔테이션을 받았다. 기본 임금이 없이 오로지 실적으로만 돈을 버는 구조라더라. 그렇지만 전날 워낙 잘팔리는 장면을 직접 봤고, 하나에 20달러라고 알고있었기에.. 기본 시급이 없다는건 별로 중요하게 들리지 않았다.

4월 8일. 실전 투입. 장사 드럽게 안됐다
4월 9일. 쪽박
4월 10일. 일요일이라 하루 쉬엇다. 그래도 일을 하고있다는 만족감이 있엇기에 휴일을 휴일답게 보내자는 생각으로 미술관에 다녀옴
4월 11일. 쪽박
4월 12일. 중박
4월 13일. 쪽박
4월 14일. 쪽박

시간이 지나고 보니, 6일 장사가 잘 됐던건 그냥 그날 운이 유난히 좋아서였다.....

13일밤 같이 사는 형의 진지한 충고에다가 14일날 본 4년차 직원의 판매실적을 보고 일을 그만두기로 결심함.
14일 아침 6시 50분에 집에서 출발해 사무실에 7시 15분까지 도착 후 오전회의를 하고 재고파악 후 9시 30분부터 6시까지 단데농에 있는 주유소에서 일하고 집에는 거의 8시가 다 되어서야 도착. 그렇게 하루종일 일해서 번 돈 : 18달러

게다가 일하다보니 맨처음 중국 대학생 녀석이 말한 '20달러'는 사실이 아니었다. 
-소비자판매가는 40달러가 맞음
-소비자 직거래 세일즈이기때문에 그보다 싸게 넘기는게 기본
-사무실에서는 한캔을 '25달러'에 판매하라고 지시함
-현장에서 세일즈 직원들은 손님들에게 '이 클리너가 원래 40달러인데, 오늘 여기서 사시면 35달러에 드리고 거기다가 원래 30달러인 극세사 수건(사무실 지정:10달러)을 무료로 드린다고 말함.
   :  실제 사무실의 지정대로 25+10달러에 팔게됨. 내게 남는돈은 25달러중 5달러와 10달러중 2달러. 
-혹은 60달러에 두 개와 극세사 수건을 공짜로 준다고 말함 
  :  25+25+10 = 60 딱 맞아떨어짐. 그래도 나한테 들어오는 돈은 5+5+2 = 12달러

이런식이었다. 말 그대로 '원래' 40달러에 팔리는건 맞지만, 그건 정말 '원래' 가격이고.. 길거리 직판에선 그렇게 파는게 아니었다. 아 중국친구야... 설명을 하려면 너부터 제대로 알고 설명했어야지..



4월 15일. 아침 일찍 일어나 이력서를 수정함.
 일단 이름을 바꿨다. Joel이라는 이름을 쓰면서 내가 생각했던 발음은 [Jo-el]이었지만, 그건 한국어 화자인 내 착각이었다. 영어를 모국어, 혹은 제2언어로 쓰는 사람들은 하나같이 oe를 한 음절로 발음했고, 내가 내 이름을 발음하는데 자신이 없어지는 이상한 상황이 발생했다. 결국 그냥 쉽디쉬운 이름 가운데 Harry로 결정.

T한국식당, M한국식당에 이력서를 넣음. M식당에선 약간의 말실수를 했기에 큰 기대 안함.
그런데 T식당 사장님이 커버레터를 보시더니 '첫 문단은 잘 베꼈네' 라고 말씀하심.. 사실 그 부분은 인터넷에서 본 다른 사람의 이력서를 베낀 부분이 맞았다. 내가 보기엔 인상적인 구절이라 생각해 그대로 넣었지만, 업주들 눈에 그렇게 보인거라는 사실에 당장 수정했다. 아예 단도직입적으로 내 소개를 했고, 전체적으로 문장은 단순하게, 강점은 두드러져보일수 있도록 수정했다.



4월 16일.  T식당에서 다시 연락이 와 면접을 보러 갔다. 역시 약간의 말실수를 했고, 미련없이 가게를 나와 이력서를 대충 돌렸다.

4월 17일. 기분전환을 위해 머리를 자르다. 멜번의 하늘에서 알게된 연습생 무료 헤어컷이었는데, 결과는 대만족. 멜번에서 머리자르실분들, NARA HAIR[각주:3] 괜찮습니다 ㅋㅋㅋㅋ(론스데일 203)
머리를 자르고 나와 H형과 세인트킬다 해변에 갔다옴. 어차피 구직 잘 안될거, 일요일인데 하루정도 쉬어주자!

H형이나 나나 그리 신나는 상황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놀러간김에 사진은 좀 즐거워'보이게'

세인트킬다 해변에 가면 이렇게 야생 펭귄을 볼수가 있다! 펭귄 펭귄 펭귄!


집에 돌아와 호주바다를 뒤적거리다 집 바로 앞 헬스장 청소일을 발견하고 지원 메일을 보냄


4월 18일. 일단 청소업체에서 연락이 왔음. 저녁에 바로 시작하기로함. 하루종일 이력서를 돌렸다. 4시에 T한국식당에서 전화가 왔음. 수요일부터 일하기로 결정. 다시 일이 좀 풀려가는것같아 기분이 좋아지기 시작. 그러나 한편으로는 결국 한국식당에서밖에 일할수없다는 사실에 씁쓸함.
그러기도 잠시, T식당에서 다시 전화가 왔다. 그쪽에선 저녁 9시 마감까지 책임질수있는사람을 원하기 때문에 저녁 청소일을 하고있다면 안되겠다는 통보. 하루 2시간 30분짜리 청소일때문에 풀타임 식당일을 놓침. 진짜 허무했지만, 원래부터 그닥 기쁜 일자리가 아니었기에 그냥그냥 받아들임. 저녁엔 청소일을 시작

4월 19일. 이력서를 또다시 약간 손보고 40장 인쇄. 계속 지원함. 라이곤 스트리트에 가봤지만 경력자만 뽑는다는 말만 여러번 듣고 돌아옴. 집근처 하버베이 쇼핑센터에 있는 가게들에도 몇군데 지원

4월 20일. 늦잠을 잤다. 일어나보니 날씨도 최악. 아무 희망 없이 이어지는 날들에 지쳐가고 있었음. 룸메이트 형들은 일과 공부를 하러 나갔고, 혼자 남겨진 집에서 컴퓨터에 저렇게 일기를 썼다.

 
저걸 쓰고 컴퓨터를 끄니 시간이 2시 45분이었고, 일단 15분정도 잠이나 자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바로 누웠다. 눈을 뜨니 3시 10분. 그리고...

알람소리에 눈을 뜨자마자 정말 '곧바로' 모르는 번호한테서 전화가 왔다. 어제 지원한 Nando's[각주:4]식당이었고, 한번 보자더라. 당장 집에서 튀어나갔고, 다음날 트라이얼 하기로 약속을 했다. 

4월 21일. 아침 11시 45분까지 식당에 갔고, 3시간동안 접시닦이 일과 식탁 닦는 일만 했다. 그리고 점장과 확실히 계약을 했다. 다음주 월요일부터 교육 시작이다. 교육 기간동안 시급 9달러, 교육이 끝나면 그때부턴 시급이 18달러다. 

당분간 지금 하고있는 저녁 체육관 청소일과 병행할 예정이다.


3월 15일에 도착한 워홀러, 4월 21일 드디어 호주 현지인이 운영하는 식당에 취직하다.



 
  1. 아 진짜 커피... 멜번 와서 저지른 최악의 실수였다. 돈,시간 모두 버린 선택이었음. [본문으로]
  2. 호주에서는 그냥 파트타이머도 세금을 내면서 일하는게 법이지만(=택스잡) 세금계산을 하지 않고 그냥 현금으로만 임금을 받는 일(=캐쉬잡)도 많습니다. 어떤 일이 더 대우를 잘 받을지는 분명하겠죠. 호주 내에서 아무 경력도 없는 사람이 처음부터 택스잡을 하기는 생각보다 훨씬 어려운것같습니다. [본문으로]
  3. 돈이 정말 부족한데 무료로 정말 잘 다듬어주셔서 엄청 고맙다. 홍보해드린다고 약속했으니 여기서 약속을 지키고있다ㅋㅋ [본문으로]
  4. 호주 내에선 대중적인 프랜차이즈 음식점. 닭고기 요리를 주료 한다. 프랜차이즈 관리가 약간 느슨한지.. 매장마다 사장님마다 근무조건이 천차만별인듯하다. 난 호주인이 운영하는 Nando's에서 일하게되었다ㅜㅜ [본문으로]

호주 워킹홀리데이 1. 드디어 도착!

2011/워킹 홀리데이 일기2011. 3. 29. 23:27

(11시간정도 비행기를 타고 멜번 툴라마린 공항에 도착했다. 비행기는 하여간 아직까지 나에겐 신기하다. exif 사진정보의 시간이 한국시간이랑도 약간 틀리고, 현지 시간으로 조정도 안되어있습니다.)

한국시간 6시 10분에 출발한 비행기가 현지 시간 7시 쫌 전에 도착햇다. 밤새 비행기 타보는게 처음이라 그랬나? 밤에 잠을 자려고했지만 별로 못자고 도착했다. 뭐 그렇다고 피곤한건 없었지만ㅋㅋㅋ


처음 공항에 도착했을땐 마냥 모든게 다 신기했다. 2주가 지난 지금 돌아보면.. 그렇게 신나있을때 좀 더 많이 놀걸 하는 후회가 든다ㅜㅜ.
 

(내가 타고온 대한항공 직항 비행기. 아.. 항공편을 제대로 조사하지도 않고 그냥 워킹홀리데이 할인이라고 좋다고 예매했던 비행기다. 남들 다 캐세이,콴타스 타고올때 난 괜히 비싼돈주고 이게뭥미ㅋㅋㅋ)
 
아무튼 드디어 도착한 호주라는 나라! 여러가지 설명이 동원될수 있겠지만, 저순간에는 그냥 모든것이 다 신기하고 신났다. 그러다가 점점 현실적인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입국심시가 까다롭다는데 가져온 말라리아 예방약때문에 혹시나 복잡해지지나 않을까.. 그런데 이게 왠일? 입국심사카드 1번 항목(의약품 및 ~~~~ 가져왔냐?)에 예라고 체크한 나에게 입국심사원은 그냥 뭘 가져왔냐고 물어보기만 했다. 난 미리 준비한대로 간단한 비상약과, 호주를 떠난 후 동남아시아와 인도를 갈 예정이기 때문에 말라리아 예방약까지 가지고 왔다라고 대답을 했고, 그걸로 입국심사는 가볍게 통과했다. 호주 입국심사 누가 까다롭다그런거니... [각주:1]

하지만 일이 그렇게 쉽게만 풀리지는 않았다. 입국 심사를 기다리는데, 공항 직원이 여권 덮개를두 벗기라고 말했다. 사실 맨처음엔 제대로 못알아들었는데, 직접 내 여권을 가져가더니 덮개를 벗겨줬다. 뭐.. 그다지 고맙진 않았다ㅋㅋㅋㅋ 그런데 입국심사대를 통과한 후, 다시 여권 덮개를 씌우려다가.. 그만 덮개가 찢어져버렸다 ㅡㅡ 본격적인 호주 땅에 들어서서 처음으로 한 행동이 여권 덮개 찢어먹기라니.. 불길한 생각이 들기도 했지만, 액땜했다고 치고 그냥 무시했다. (그런데 그 후로도 액땜했다고 생각할만한 일들이 끊이질 않고있다ㅋㅋㅋㅋㅋ)

그러나 두번째 악재가 터졌다. 내가 예약한 그린하우스에서 보낸 메일에, 스카이버스를 타면 자기네 호스텔 앞까지 데려다준다고 했다. 그 메일만 읽고 더이상 다른 정보를 알아보지 않은 나는.. 스카이버스 호텔 셔틀이 아닌 일반 스카이버스를 타고는 운전기사한테 그린하우스까지좀 가달라고 말했다ㅉㅉ 기사님은 당연히 사무적인 말투로 '이 버스는 서던크로스 역까지 가는 버스고, 각 호스텔로 가는 버스가 아니다.' 셔틀버스에 대해 아는게 없었던 나는 그래도 그냥 스카이버스를 탔고, 서던크로스에서 내려서 그린하우스까지 걸어갔다. 가던 와중 플린더스 스테이션을 지나쳤고, 당연히 사진을 한방 찍어주셨다,

(니가 바로 플린더스 역이구나! )

그 후 도착한 그린하우스 백패커! 이메일로는 뭐 예약한 체크인 시간보다 한시간 이상 늦게 올 경우에는 다른 사람에게 방을 줘버릴수도 있다느니... 겁을 잔뜩 주더니, 정말 한시간 늦게 도착했는데 그냥 반갑게 맞아줬다. 사실 그곳에서 열흘정도 있어보니.. 그녀석들 일하는 태도가 파악됐는데, 참 불성실하다ㅋㅋㅋㅋㅋㅋㅋㅋㅋ 그건 차차 다음 글에서 써야지...

내 방 417호에 짐을 풀어놓고, 곧바로 다시 나왔다. 참 지금 생각해도 첫날에 많은 일을 후다닥 처리해버렸다. 핸드폰 개통, 계좌개설, TFN 신청, 커피코스 등록까지.. 한국에 있을때는 사실 도착후 이틀정도는 관광객의 마음으로 좀 놀아야겠다고 생각했지만, 막상 먼 외국땅에 홀로 던져지니 그럴 여유가 없었다. 최대한 빨리 집을 구하고 일자리를 찾고싶은 생각뿐이었다.

그런데 돌아다니면서 멜번 도시 구경을 하는데.. 익히 들어왔던 악명높은 날씨가 아니라 정말 화창하고 너무나 맑은 날이었다. 


(이런 정도!?)

그런 날씨와 함께 멜번의 첫날을 보내다보니.. 이 도시가 왠지 편안하게만 느껴졌다. (물론 첫날의 착각이었다ㅋㅋㅋ)

 은행 계좌개설까지 마무리짓고, 도시를 이곳저곳 돌아봤다.


ANZ 은행 앞 거리의 음악가. 멜번에는 거의 매일 이런 길거리 공연들이 펼쳐진다.

종로에도 있는 마차! 관리좀 잘했으면 좋겠다... 옆에 지나가면 냄새가 난다 ㅜㅜ

카페가 몰려있는 센터 플레이스. 사실 멜번 도심에는 이곳 말고도 카페나 레스토랑이 몰려있는 플레이스나 레인이 한두군데가 아니다.

센터 플레이스 맞은편 디그레이브스 거리. 사실 여기가 센터 플레이스보다 더 괜찮은것같다.

디그레이브스 앞 거리의 음악가.

내 맘에 드는 장소 발견! 이런 곳에 시립 도서관이 있다니.. 왠지 안어울리는 위치같지만 그래도 도서관이라면 환영이다.

안으로 들어가보니.. 이럴수가 ㅋㅋㅋㅋㅋㅋㅋㅋㅋ 얼마나 한국 학생들이 많이 공부하면 한글 안내문이 있을까?? 중국어 안내문도 있다.

그 옆을 보니.... 어... 이거.. 설마...?

맞다. 플레이스테이션 3!!!!!!!!!!!!!!! 감사합니다 멜번 시립 도서관님 ㅋㅋㅋㅋ

플린더스역을 다시 한번 지나갔다. 아침에 처음 찍은 사진보다 좀 더 잘나온것같다. 그리고 이제부터 카메라 시간 정보글 현지 시간으로 맞추었다.

세인트 폴 성당.. 맞나?ㅜㅜ


내가 쓰던 그리운 417호 침대. 스프링이 엉성해서 좀 불편하긴 했지만, 그래도 나의 첫 숙소였고 룸메이트들도 다들 좋은 편이었다. 아 왠지 저때도 그리운데?ㅋㅋ

마침 도착한 날이 저녁에 무료 바베큐를 해주는 날이었다. 왼쪽에 나온 검은 후드티의 남자가 첫 룸메이트 대만인 JOE!

공짜라니까 다들....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저 소세지에서 개고기 맛이랑 냄새가 났다 ㅡㅡ....... 내 착각인가?


그린하우스 건물에서 바라본 도시의 모습들




호주인 여행자 Anthony가 사온 와인. 화이트와인이었는데, 정말 맛있었다. 그런데 이름이...?

와인까지 다 마시고 내 방으로 돌아가려는데, 어? 저거!!!?

ㄷㄷㄷ......여기 있으면서 느낀건데, 아마 남북한 사람들중에서 전세계적으로 가장 유명한 사람은.. 북한 김씨 가족인듯싶다. 여행자숙소에서 만난 '조금 생각 있는' 외국애들은 내가 남한에서 왔다고 말하니까 꼭 북한에 대해 물어봤다.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게다가 이런 풍자극까지..


이렇게 멜번의 첫날이 지나갔다. 위에도 썼지만 첫날 핸드폰 계좌 TFN 커피코스 등록까지 마쳤을땐 정말 모든게 다 잘 풀릴것만 같은 기분이었다. 앞으로 어떤 날들이 다가올지 전혀 모른채..ㅋㅋㅋㅋㅋㅋㅋ







  1. 사실 호주 입국심사는 꽤 까다로운 편인것 같습니다. 텔레비전을 보다보니 공항 세관에 대한 프로그램을 방송할 정도로 자신들의 검역/세관 체계에 일종의 자부심(?)도 느끼는것 같구요. 이 일기는 당시 제 심정과 기억을 바탕으로 작성중이기 때문에.. 양해 부탁드립니다. [본문으로]